김대중대통령에게 지팡이는 한동안 개인적 상징이나 다름 없었다. 시사만화가들이 그를 풍자할 때 지팡이를 빼고는 그림이 안됐다. 김대통령 본인도 지팡이를 자신의 험한 정치역정에 대한 훈장쯤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싶다.DJ가 그런 지팡이를 안 짚기 시작한 것은 97년초부터였다. 교통사고와 고문 후유증인 고관절치료에 진전을 본 탓도 있었지만 대선을 앞두고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의욕이 강했던 것 같다. 자신의 건강과 관련한 온갖 음해에 대한 반박성 시위였던 셈이다. 선반을 지키는 신세가 됐던 DJ의 지팡이 3개는 당선자 시절 국민회의가 주관했던 실업바자회에 출품돼 1,200만~1,800만원에 팔렸다. 그 돈은 IMF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강행군의 선거운동기간과 당선자 시절을 거쳐 취임 1주년에 이르기까지 김대통령이 보여준 왕성한 활동은 그의 체력이 지팡이에 의지할 수준이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국민들은 의장대사열 등 야외행사 때 김대통령이 불편하게 걷는 모습을 바라보며 늘 조마조마해 한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국민에게 편치 않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같다. 취임 1주년을 계기로 김대통령이 다시 지팡이 짚는 것은 어떨까. 지팡이는 노약자의 이미지도 있지만 안정감과 친근감을 주고 보는 이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게 하는 여유로움도 자아낸다.
비단 신체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여러 사람의 힘을 빌리고 중의를 모아 국정을 운영하는 모양새를 취하면 국민들은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홀로 완벽을 추구하기 보다 더불어 의지하고 함께 가는 국정, 즉 「정신적 지팡이」를 잘 활용하는 국정운영기법이 집권 2년째를 맞이하는 김대통령에게 필요한 것 같다. DJ지팡이를 판 돈을 지원받아 실직의 절망을 딛고 일어선 누군가가 김대통령에게 건강과 장수에 좋다는 명아주지팡이(청려장)를 취임 1주년 축하선물로 보낸다는 그런 미담 소식은 없을까.
이계성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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