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올 가을쯤 유가인상을 꾀하기 위해 담합을 형성할 것이라는 신빙성 있는 제보, 또는 정부가 발행한 국공채의 많은 물량이 결국은 중앙은행의 추가적인 화폐발행에 의해 소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있다고 하자. 퇴근 후 마감뉴스에서 이 소식을 접한 일반인의 반응은 과연 어떠할까. 그 사람이 합리적인 경제주체라면 이러한 정보를 처음 획득한 순간부터 바로 가까운 미래의 물가수준에 대한 전망을 변경할 것이고, 이에 따라 현재의 경제활동도 수정할 것이다.사실 경제학은 외부의 충격에 대한 경제주체의 반응을 마치 물리학에서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소립자(particle)에 비유하여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소립자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경제주체의 선택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어떠한 예상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경제주체는 과거의 경험을 참조함은 물론 미래의 변화까지 예상하여 현재의 선택을 행한다. 특히,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과 같은 주요 경제변수의 미래값을 예측할 때 합리적인 경제주체들은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하여 예측오차가 없는 효율적인 전망을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경제주체들의 이러한 노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각 연구기관이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경제전망치일 것이다. 비중 있는 경제연구소의 합리적인 경제전망은 일반인의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간과한 채, 어떤 연구기관이 자발적이든 아니든 표밭을 의식한 정치가의 단순한 장밋빛 전망을 여과 없이 발표한다면 이는 평화의 사자(使者)를 죽이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합리적이지 못한 경제성장률 전망에 근거한 실업률의 과소평가나 과대평가는 필연적으로 대다수 국민의 아픔을 가중시키거나 정부의 예산낭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판단할 때, 몇 년전 한 국책경제연구소가 21세기 중반 우리 나라의 평균적인 소비수준이 영국의 그것을 능가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한 과장된 전망이 최근 외환위기의 원인(遠因) 중 하나라는 주장은 결코 과장일 수 없다. 이러한 전망과 과소비로 대표되는 거품경제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형태의 경제정책이든 기계적인 것은 없다. 정부가 의도하는 정책의 효과는 민간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품게되는 예상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정책의 효과는 경제논리와 시장심리의 조화에 의해 얼마든지 모습을 달리한다. 정부의 투명하고 일관된 정책기조와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적인 지혜에 바탕을 둔 연구기관의 독자적인 경제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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