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이종기 변호사 수임비리와 관련해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 2명의 사표를 받고, 다른 판사 3명에게 대법원장이 「엄중경고」하는 것으로 처리를 매듭지었다. 대법원은 이들이 명절 떡값 등의 명목으로 50만~100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사표를 냈거나 징계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다른 불이익은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대신 사과성명과 비리근절 대책을 함께 내놓았으나 여기에 귀기울이는 국민은 별로 없고 법조계에 대한 불신만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언론이 사건 본질을 왜곡, 과장하고 있다」는 법조계 일각의 지적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파문에 연루된 검사와 판사들중 최고위급인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과 양삼승 부장판사는 모두 청렴성과 능력이 남달라 신망이 높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공개성명과 편지로 항변하고, 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을 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이런 혼란은 궁극적으로는 법조인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 등에 대한 법조계와 국민의 인식에 괴리가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우리 국민은 법조인들에게 엄격한 윤리를 기대하고 있지만 사법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 판,검사들은 공복의 자세에 충실하지만 「법조 3축」을 이루는 변호사들은 이미 대부분 공익에의 봉사가 아니라 수입증대를 위해 「법조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는 두 직역 사이를 학연 등으로 얽힌 판,검사들이 하루 아침에 오가는 현실에서 수임비리와 전관예우 등 갖가지 비리가 싹튼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조개혁 논의는 늘 변호사 윤리규정과 비리 변호사 처벌 강화 등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다. 특히 사법시험 정원확대를 통한 변호사 숫자 늘리기가 만병통치약처럼 등장하더니, 최근에는 IMF사태를 이유로 사시정원 축소론이 등장하고 있다. 법학자들을 포함한 법조계의 개혁 논의는 국민을 위한 법률서비스 확대라는 명분과는 달리 법조인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치우치고 있다.
수임비리를 없애기 위해 변호사 광고를 허용하겠다는 계획도 시장논리만을 따른 것이다. 변호사 수가 100만명에 가까운 미국에서는 「변호사 망국론」이 나오고 있고, 워런 버거 전대법원장은 그 출발점이 바로 변호사 광고를 허용한 것이라고 통탄한 바 있다.
진정한 법조개혁 논의는 법조인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고, 법률보험 도입 등 국민 누구나 쉽게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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