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수 사복차림 당연하다
1999/02/19(금) 17:48
법무부가 법정이나 청문회에 출석하는 미결수에게 사복 착용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인권보호 차원에서 큰 진전이다. 이 조치는 우리의 형사 사법절차 곳곳에 남아있는 인권침해 요소를 제거하는 작업 가운데서도 특히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범죄혐의를 받고 기소됐지만 아직 재판도 받지 않은 미결수에게 죄수복을 입혀 법정에 내보내는 것은 일제시대의 잔재다.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현대 형사법의 대원칙은 우리 헌법에도 규정돼 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 헌법규정은 사법현실에서 외면돼 왔다.
그동안 이 문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행형당국은 「수용자에게는 일정한 의류와 침구를 지급한다」는 행형법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는 원래 교정시설 수용자의 복지를 위한 훈시규정일뿐, 미결수의 인권을 침해하는 수의 착용에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형사피고인들은 아직도 「불구속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수사단계에서부터 헌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수갑과 포승에 묶인 채 법정까지 끌려와 죄수복 차림으로 심리적 압박감속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형사피고인이 검찰과 대등한 소송당사자로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재판 본래의 뜻이 크게 훼손돼 온 것이다. 사법 선진국에서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뚜렷한 피고인도 불구속상태에서 사복 차림으로 법정에 서는 모습을 우리는 수십년동안 지켜 보면서도 우리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이 엄청난 비리혐의를 받고 법정에 서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에 우리는 분노하고, 또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미결수인 전직 대통령을 수의 차림으로 법정에 세우는 것을 외국인들이 의아하게 여기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전직 대통령의 체면이 남달라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피고인 인권보호 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것을 여지없이 내보인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번 조치를 우리나라를 「인권국가」로 만들겠다는 김대중대통령 정부의 의지가 현실화한 또 다른 진전으로 높이 평가한다.
또한 이를 계기로 피의자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여지가 큰 피의사실 공표, 검찰등 수사기관의 「밤샘수사」, 인신구속 남발, 고압적인 법관들의 재판 진행자세 등 사법절차에 남아있는 모든 인권침해 요소와 관행들을 과감하게 제거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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