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시위] 점거시위 배경과 전망
1999/02/17(수) 17:20
16일 독일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쿠르드족의 그리스 공관 점거와 인질극, 분신자살 등은 압둘라 오잘란이라는 쿠르드 독립운동 지도자를 잃은 데 대한 항의와 좌절감의 표현이다. 이날 물리적 시위는 터키 정부의 오잘란 체포 발표가 있기도 전에, 그것도 특정 국가의 공관을 타깃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짐으로써 전 세계에 퍼져있는 쿠르드족 지하조직의 배후 조정설을 낳고 있다. 시위 군중들은 60년대부터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와 이라크 등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탈출한 난민들로, 그 절대다수인 50여만명이 서유럽에 정착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동의 집시」로 불리는 쿠르드족의 염원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2,300만명의 동족을 하나로 묶는 단일 민족국가 건설이다. 이들은 4,000년의 오랜 역사에 이란의 파르시고어(語)계통의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등 독립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주변국및 국제사회의 견제, 그리고 쿠르드족 내부의 불화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쿠르드족의 방랑이 시작된 것은 16세기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의 쿠르드 왕조 침공 이후 400년이 넘었다. 이들의 독립운동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자치요구가 받아들여진 1920년의 세브르 조약을 터키가 파기하면서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이 지불해야 했던 피의 대가는 엄청났다.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터키(1,200만명)는 고유 언어와 의상을 금지하고 반군기지를 습격하는 등 철저한 탄압으로 일관했고, 이라크는 88년 4월 전투기를 동원한 독가스 살포로 산악지역에 거주하던 쿠르드족을 몰살시킨 이른바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물론 오잘란이 이끄는 쿠르드 노동자당(PKK) 역시 터키 등 서방국가들에 의해 「80년 이후 3만명을 살상한 테러집단」으로 지목받고 있다.
오잘란이 체포됨에 따라 적어도 84년부터 그가 주도해온 무장 독립투쟁은 일단 예봉이 꺾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동의 관측통들은 『수천명의 PKK반군들은 당분간 힘의 공백에 따른 갈등과 분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터키나 이라크의 대 쿠르드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제2의 오잘란」의 등장과 유혈 사태의 재현은 단지 시간문제일 것으로 봐야 한다. /유성식기자 ssyoo@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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