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의 귀향] '재기' 부푼꿈안고 설레는 귀향
1999/02/13(토) 18:05
- 노숙자쉼터 '자유의 집' 248명
13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노숙자 쉼터 「자유의 집」. 단촐한 옷보따리를 든 사람들이 하나, 둘 마당에 대기한 8대의 버스에 오른다. 목욕과 이발을 하고 찌든 뗏국물을 빨아 낸 외투 차림.
손에는 서울시가 마련해 준 3만원짜리 선물세트까지 들었지만 얼굴과 옷차림을 다시 점검하느라 상당수가 세면장 거울 앞을 떠날 줄 모른다.
『여편네에게 그렇게 잘 보이고 싶어?』 남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보내는 격려어린 농담이 이어진다. 「자유의 집」개소이후 40여일만에 만끽하는 흥분과 즐거움이다.
아들 희수(熙秀·13)와 함께 전남 장성의 고모댁을 향한 구일성(具一星·36)씨. 외항선원 일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던 구씨는 올해 초 밀린 집세를 못 내 은평구 불광동 지하 월세방에서 쫓겨난 뒤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희수를 친척집에 맡기고 『돈 벌어 오겠다』며 나선 길이 서울역으로, 자유의집으로 이어진 것. 그러나 희수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가끔씩 아빠가 보고싶어 놀러오던 희수는 며칠 전부터 떼를 써 아예 자유의 집 식구가 됐다.
어제는 희수의 초등학교 졸업식. 혼자 키운 자식이지만 희수는 성격도 밝고 공부도 곧잘 해 이날 으뜸상과 15만원의 장학금까지 받았다. 『고모님과 상의해 시골에서 우선 비닐하우스를 해 볼 계획이예요. 제겐 희수가 마지막 남은 희망이고 힘입니다』
맞은 편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은 박선남(朴宣南·38)씨는 2년 전 아들(5)과 함께 전주 친정으로 가버린 아내를 만날 일이 설레고 두렵다. 노숙생활 11개월을 청산하고 설 연휴 뒤부터 강원도 숲가꾸기 공공근로사업에 나설 계획.
『힘들더라도 이젠 가족과 함께 굶겠다고 무조건 매달려 볼 참입니다』 박씨는 『아내와 화해하고 노모(83)께 문안을 드린 뒤 곧장 공공근로일을 할 것』이라며 『막노동 일감이나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상복(朴相復·44)씨. 경기 양평의 대성리에서 무허가 간이음식점을 경영하다 지난해 물난리로 전 재산을 잃고 「알거지」가 됐다. 늦바람에 아내와 이혼한 뒤 고향인 충남 서천을 떠난 것이 10여년 전.
뒤늦게 시작한 음식점 경영은 적으나마 돈버는 재미를 줬지만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성격탓에」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돈 벌어 좋은 차 타고 고향을 찾겠다는 고집때문에 지난 추석에도 친지들을 뵙지 못했다』는 박씨는 『나도 한 때는 고향에서 알아주던 목수였다』며 겸연쩍어했다.
이날 「자유의 집」을 떠나 설 귀향길에 나선 사람은 모두 248명.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와 서울시가 귀향비용으로 마련해 준 7만원여원이 가진 것의 전부이지만 이들에게 재기(再起)의 다짐과 희망만은 남못지 않았다.
/최윤필기자 ter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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