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론] 국민연금, 그래도 확대해야(김상균서울대 교수)
1999/02/12(금) 17:30
오는 4월1일 시행을 앞둔 국민연금의 확대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높다. 특히국민연금관리공단이 소득신고지침을 발표한 지난 달 29일 이후로 반대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리하여 도시 자영자에 대한 확대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러한 비판의 근거는 대략 네 가지이다. 첫째 소득파악률이 높아질 때까지 연기해야 한다는 것, 둘째 경제가 어려운 때 국민연금 확대가 부적절하다는 것, 셋째 신고권장소득과 실제소득의 차이에서 오는 불만, 넷째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다.
IMF체제이후 급격히 감소된 소득과 급증한 실업률을 고려할 때 97년 기준의 신고권장소득에 대한 가입자들의 불만은 개인차원에서 당연할 수 있다. 또 1,000여만명의 신규 지역가입자의 월소득액을 파악하는데 정부는 인력, 홍보, 전산 등 각종 준비를 원활하게 못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대시기 연기론의 상당 부분은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첫째 소득파악률이 높아질 때까지 국민연금 확대를 유예한다면 앞으로 최소 십수년간 국민연금의 확대는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조세제도는 건국후 50년동안 국민의 소득, 특히 자영자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득파악을 위한 정확한 대안 제시없이 국민연금 확대 유예만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연금을 실시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이미 본격적인 노령화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를 고려한다면, 국민개연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발등의 불이다. 문제는 자영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이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인데, 도시지역 확대는 이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국민연금 확대를 경제위기 극복 후로 연기하자는 주장은 반쪽 국민연금을 장기화시킬 위험이 있다. 우리에게는 74년 실시 예정이었던 국민복지연금 제도가 석유파동을 이유로 연기되어 14년이 지난 8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실시된 역사가 있다. 하나의 민생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하기가 별따기처럼 어려운 나라에서 노인들을 아무런 보장책없이 또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 것인가. 오히려 조기퇴직이 보편화하기 시작한 지금이 국민연금 확대가 필요한 시기이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원의 동원과 노령인구의 수요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연금확대는 경제성장에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셋째 실제소득과 신고권장소득의 차이에서 오는 가입자들의 불만은 현행법 내에서 정산제도나 신고유예를 통해서 조정이 가능하다. 만일 현행 조정제도가 미흡하다면 국민연금 확대를 연기하지 않고도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서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예컨대 불만의 대상인 무소득 혹은 소득차이의 입증자료와 입증절차를 가입자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개선하면 되는 것이다.
넷째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하는 불만이 있다. 예를 들면 재정 불안정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급여율 감소를 문제삼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개인연금과 국민연금을 혼동하거나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개인연금보다 낮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는 홍보의 강화와 이해를 구하는 정부의 노력으로 해결할 것이지 이미 계획된 제도 시행 자체를 유보시켜 될 일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성인들의 전 생애주기를 기준으로 설계된 장기적 개념의 사회연대적 제도이다. 당장의 어려움 회피를 위한 조급성 혹은 시장기구 만능의 이념적 편협성으로 인해 합의된 제도의 실행을 굴곡시킨다면 국민의 노후는 IMF체제에서 보다 더 황폐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당국은 여론의 비판에 겸허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 자체의 목적과 미래의 사회적 필요성의 근본원칙이 단기적 요구들 때문에 훼손되는 일 또한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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