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총장회담 불발 코미디'
1999/02/12(금) 17:29
11일 여의도 정가에서는 한편의「코미디」가 연출됐다. 주인공은 여야 총재회담 성사임무를 띤 국민회의 정균환(鄭均桓)·한나라당 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 약속과 번복이 거듭된 두 사람의 신경전 끝에 총장회담은 결국 무산됐다.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은 이렇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10시께 전화접촉을 갖고 회담추진을 논의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자민련 배제를 요구하면서 회담추진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결국 오후 3시 국회 도서관에서 양당 총장만 만나기 합의했다. 그러나 자민련이 항의하고 나섰다. 회담에 왜 자민련을 제외하느냐는 것이었다. 난처해진 정총장은 신총장에게 자민련의 뜻을 전했으나 신총장이 완강히 거부했다.
고심끝에 정총장은 약속한 오후 3시께 신총장에게 전화, 오후 6시30분에 자민련을 빼고 「몰래」 만나자고 다시 제안했다. 그러나 신총장은 기자들에게 이를 공개하고는 비서에게 『좀 쉬다가 약속장소로 직행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정총장은 두번째 제안마저 노출돼버리자 아무래도 회담 강행이 무리일 것으로 판단, 약속시간 1시간전 신총장측에 약속파기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신총장의 행방을 모르는 비서는 『알려줄 방법이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제시간에 약속장소에 나타난 신총장은 비서로부터 『정총장이 약속을 못지킨다고 연락해 왔다』는 보고를 받고는 허탈해 하며 기자들과 술을 마셨다. 이 시간 정총장은 같은 건물의 다른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어쨌든 약속을 깬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듯 비서를 살짝 보내 신총장의 저녁식대를 대신 지불했고, 뒤늦게 이를 안 신총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국민으로부터 짙은 불신과 냉소를 받기에 이른 우리 정치의 단면과, 여야관계의 편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씁쓰레한 풍경이었다.
/김성호 정치부기자 sh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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