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산오른 YS] "오르면 내려갈때 있다"
1999/02/12(금) 18:07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12일에도 북한산에 올랐다. 김전대통령은 살을 에는 세찬 바람속에 눈길을 밟으면서 띄엄띄엄 입을 떼었다. 그는 다시한번 호연지기(浩然之氣·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는 도덕적 용기) 이야기를 했다.
원단(元旦)에 상도동 자택을 찾았던 세배객들에게 들려주었던 신년화두로, 과거 큰 일을 앞두고 즐겨쓰던 주제어다. 김전대통령에게 이 말은 정면돌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셈인데, 설연휴 이후 갖기로 한 기자회견을 염두에 둔 듯 꾹꾹 누른 발음이었다.
김전대통령은 『오르면 내려갈 때가 있다』는 예의 「권력 등산론」도 재차 언급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들으라는 소리인 듯 싶었다. 김전대통령은 또 과거 기자들과 산에 함께 오르던 경험을 술회하면서 「언론자유」를 주제로 긴 호흡을 토하기도 했다.
83년 5월 목숨을 건 단식을 했을 당시 지리산 반달곰 사건은 도하 신문의 1면을 장식했지만,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취급되지 못했음을 적시하면서 『잠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수차례 주장해온 현 정권의 「언론탄압」과 자신의 과거경험을 오버랩시킨 비껴치기이자 일부 언론에 대한 불만토로였다.
김전대통령은 그러면서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주막 강아지」발언에 대해선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다만, 이따금 이마에 그려지는 내 천(川)자가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줄 뿐이었다. 동행한 김기수(金基洙)전청와대수행실장 등 측근들도 같잖다는 반응일색이었다.
상도동 대변인역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완전한 정통성을 갖추었을 뿐아니라 재임중 단 한푼도 받지 않은 김전대통령과 총칼로 집권한 뒤 엄청난 비자금을 긁어모은 전전대통령은 애당초 말 상대가 될 수 없다』며 대거리를 하지 않으려 했다.
박의원은 『잘하는 것은 칭찬해야 하지만 잘못된 부분은 비판하는 것이 전직 대통으로서 당연한 도리』라며 『입이 백개라도 할 말없는 전전대통령이 김전대통령의 정당한 지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침을 놓았다.
다른 민주계 의원들은 아예 『어디다 대고...』라며 특유의 불끈성미를 누르지 못했다. 한 의원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사형선고까지 내리며 갖은 핍박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반문한 뒤 『그런 사람이 이제와서 건강 걱정에 장황한 칭송을 늘어놓으며 김대통령을 성군 떠받들듯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들이받았다.
또다른 민주계 의원은 『추징금 문제 등으로 코가 꿰어있는 전전대통령이 제 살길 찾으려고 몽둥이 든 주인 뒤꿈치를 핥고 있다』며 『그야말로 주막집 개나 하는 비열한 짓』이라고 힐난했다.
/홍희곤기자 hghong@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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