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환란특위 국정조사결과 보고서1] (요약)
1999/02/12(금) 11:02
1.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정책
가.경제위기의 발생과정 및 내용
(1)기업위기
_과거 고도성장과정에서 누적돼온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이 경기하강을 계기로 표면화, 91년1월 한보그룹부도에 이어 삼미그룹 부도 및 진로(4월)·대농(5월)·기아그룹(7월)의 부도유예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발생하게 됐음.
_이에 취약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는 다른 기업들에 대한 부도루머가 확산되면서 금융기관의 자금회수가 본격화됐고 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켜 많은 기업이 흑자도산에 직면하게 됐으며, 대기업의 연쇄도산은 수많은 중소 하청기업의 연쇄부도를 야기하는 등 「기업위기」가 발생했음.
(2)금융위기
_대기업의 연쇄도산으로 금융기관에 부실채권이 급격히 증가하게 됐으며, 일부 금융기관은 유동성부족에 직면하는 등 금융불안이 증폭됐음. 금융시장에서는 6월 금융대란설, 9월 대란설 등 루머가 확산되면서 위기가 가시화됐음.
_한편 대기업의 부도를 일시 정지시키는 「부도유예협약」도입은 종합금융회사들의 자금난을 가중시켜 단기금융시장의 마비와 종금사의 대출회수를 부추겨 기업의 연쇄도산을 초래했으며, 이는 다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하였음. 한편 은행 및 종금사 등 금융기관에 부실채권이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우리나라 금융기관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급속히 하락하게 되었음.
(3)외환위기
_97년7월 태국 바트화의 폭락으로 촉발된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가로 급속도로 이전되면서, 외국 금융기관간에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대외지불능력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음. 이에 97년하반기 들어 외국 금융기관의 대출회수가 본격화되면서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외채 만기 연장률이 급속히 하락하였으며, 일부 금융기관은 외화부도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음.
_이러한 상황에서 기아사태 처리가 장기간 지연됨에 다라 한국정부의 위기대처능력에 대한 대외신뢰가 상실되어 외국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고 외국투자자들이 이탈함에 따라 외화유동성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였음. 한편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의 외화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의 부족한 외화결제자금을 외환보유고로 공급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가용외환보유고는 급속히 감소했음.
_특히 97년 4/4분기 들어서 정부정책 및 위기관리능력에 실망한 외국투자가들이 자금을 계속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홍콩 증시 폭락(10.23)을 계기로 무디스나 S&P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음(10.24 AA_→A+). 이를 기폭제로 해외차입이 전면 중단되고, 환율의 급격한 상승(10월말 965원→11월말 1,164원), 가용외환보유고의 급감(10월말 223억달러→11월말 73억달러) 등 위기상황이 가속화했음.
_외환보유고의 감소는 국가의 대외지불능력을 저하시켰고, 이는 기업 및 금융기관의 대외지불능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야기하여 종국에는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국가전체의 대외지불 블능사태가 초래된 외환위기로 발전하게 되었음.
나. 경제위기의 원인
(1)구조적 요인
(가)관치경제와 정경유착
_경제규모가 확대되고 구조가 다양화됨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통한 개입과 보호위주의 관치경제가 지속됨에 따라 경제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됐음. 각종 경쟁제한적 산업정책 및 금융정책으로 민간 경제활동에 있어서 경쟁이 제한되었으며, 민간경제주체의 정부의존이 심화되는 가운데 기업과 금융기관의 경영혁신 노력이 미흡했고, 공기업 등 정부부문의 비효율성이 심화되어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가 고착됨.
_특히 관치경제가 오랜 세월 지속됨에 따라 관료주의가 고착되고 경제운영이 경질되었고 정책결정의 투명성이 부족해 주요 정책결정과정에 정치권 등 외부개입이 빈번해지면서 정경유착이 만연되어 투금사의 무더기 종금사 전환, 한보철강, PCS선정 등에서와 밝혀진 바와 같이 각종 특혜와 비리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책임소재가 불명확함에 따라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가 만연되어 종금사 감독 부재 등 정부의 기본 역할이 소홀해짐.
_PCS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특정업체(LG텔레콤 및 한솔PCS)의 특혜선정을 위해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장관 주도로 심사기준이 변경된 것이 조사에서 확인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심사위원 및 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이 뇌물수수로 구속된 것은 PCS사업과정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경유착으로 인해 특혜와 비리가 개입된 대표적인 사건임.
(나)기업의 부실화
_90년대 들어와 WTO체제의 출범과 OECD가입 등으로 상품·서비스 시장이 전면 개방되어 국내외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과거 개발연대에 추구하였던 외형위주의 차입경영과 선단식 경영을 지속하여 비효율적인 자본투자와 높은 금융비용부담으로 기업의 체질이 크게 약화되었음. 대부분의 재벌기업에서 과다한 외부차입(특히 낮은 환율로 인해 외채부담이 적었던 것도 과다 투자의 원인이었음)으로 인해 재무구조가 불건전해지고 수익성이 악화되었으며, 계열기업간 상호지급 보증이 크게 늘어 계열기업 전체의 부도위험이 증가하였음.
_외환위기 당시 30대 재벌그룹이 평균 20개 업종에 30개 계열사를, 5대 재벌그룹은 평균 30개 업종에 51개 계열사를 영위하는 등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선단식 확장경영을 추구하였고, 이 결과로 주력업종에서의 규모의 경제 미달, 주요산업부문에서의 과당경쟁 및 과잉·중복투자를 초래하여경쟁력이 약화되고 수익성도 현격히 저하되었음. 특히 5대 그룹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반도체 등 주요업종에 경쟁적으로 중복 참여하여 무모한 설비확장 투자를 실시한 결과 과잉설비문제 및 국내기업간 과당경쟁문제를 야기시켰음.
_대기업간의 과잉·중복투자 및 과당경쟁으로 인해 투자의 수익성이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이 철저한 여신심사(기업의 상화능력과 장래성에 대한 철저한 판단)없이 대기업에 편중여신함으로써 이들 기업의 부실화를 조장하였는데, 그 결과 30대 재벌그룹의 부채비율은 94_95년에 이미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서는 350%수준에 다달았으며, 그 이후 부채비율이 더욱 증가하여 96년에는 387%, 97년에는 무려 519%에 달하였음.
_특히, 한보의 경우 자기자본 1,858억원에 총부채가 5조9,438억원으로 부채비율이 무려 3,199%(96년 12월말 현재)에 달하였으며, 부도에 직면한 삼미, 진로, 대농, 기아, 해태, 뉴코아, 한라 등의 경우에도 부채비율이 600_700%를 상회해 정상적인 영업수익으로는 이자비용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음.
_과다부채로 인한 금융비용증가와 과잉·중복투자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기업의 수익성은 90년대 들어서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96년의 경우 우리나라 제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1%에 불과하여, 미국의 8.3%, 일본의 3.4%, 대만의 5.1%에 비하여 기업채산성이 매우 열악한 실정이었음. 특히 96년 들어와 경기하강이 본격화되고 대외적으로도 수출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순으로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발생하였음.
(다)금융기관의 부실화
_관치금융으로 금융기관의 책임경영체제가 확립되지 못한 채 철저한 대출심사를 거쳐 사업성 있는 우량기업에 대출하기 보다는 대기업들에게 집중 대출하였고, 정치권이나 정부관료들의 압력에 따라 특정 대기업들에 대한 여신이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이 크게 악화됨.
_이와 같이 금융기관의 여신심사 기능이 취약한 가운데 담보위주와 대기업 위주의 여신 관행이 지속되고 대출청탁 등 외부압력이 용이하게 작용함에 따라 기업의 중복과잉투자 및 과도한 차입의존을 사전에 견제하지 못하게 되었음.
_한편 금융규제완화와 자본자유화를 계기로 금융기관들이 외형확장에만 주력하고 유동성관리와 리스크관리를 등한시하고, 방만한 해외진출 및 외환업무 취급확대로 경영의 안정성이 크게 저하됨. 특히 외화자금의 조달운용에 있어서 주로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여 중장기 여신으로 운용하는 등「자산·부채 만기구조의 불일치(mismatch)」가 심각해 금융기관들이 유동성 리스크에 과도하게 노출됨.
_이와 같이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기업이 연쇄도산함에 따라 부실채권이 크게 증대하여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급속히 진전되었음. 특히, 제일은행의 경우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금이 자기자본의 56.2%에 달하는 등 과다한 편중여신으로 인하여 기업부실에 따른 동반 부실의 대표적 사례임.
_종금사의 경우도 대기업 집단의 연쇄부도는 부실채권이 급증한 가운데, 외화자금에 대한 단기조달과 장기운영에 따른 만기구조 불일치가 심각하여(97년10월 현재 종금사의 단기자금 조달비중은 64.4%, 장기자금 운용비중은 83.7%)항상 유동성 위기에 처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었음.
(라)국제수지(경상수지)의 적자증대
_90년대 들어와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고성장정책이 지속됨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외채가 급증, 90년대에 정부의 수출진흥책 부재와 맞물려 경상수지는 93년의 소폭흑자를 제외하고는 적자를 지속하여, 90_96년중 누적적자 규모가 487억달러에 달하고 특히 96년 중에는 적자규모가 경상GDP의 4.7%수준으로 급증했음.
_특히 93년 이후 무역적자 확대는 우리의 경제실력에 비하여 지나친 원화강세로 인한 우리 상품의 가격 경쟁력 저하에 따른 수출 둔화와 수입 증대, 그리고 기타 외화의 과소비에 기인하였음. 일본, 중국, 대만 등 우리 경쟁국의 통화가치는 하락되는 상황에서 원화가치만 높은 수준을 유지함에 따라 임금, 지가, 물류비 등 생산요소 비용이 상대국보다 높게 상승되어 우리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됨.
_특히 원화강세가 유지됨에 따라 가격체계가「수입품 저가, 국산품 고가」로 왜곡되면서 과소비를 우려할 만큼 국민들의 수입재화 및 서비스 사용이 증대하였고, 국산 시설재보다는 수입 시설재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기업뿐 아니라 대학, 공공기관까지도 과잉·중복투자가 우려될 만큼 투자를 확대하여 경상수지가 급격하게 악화됨.
_고비용(고금리, 고물가, 고임금, 고지가, 고물류비용, 과다규제 등)·저효율(정치지도자의 철학 빈곤, 투자의 비효율, 예산낭비, 관치금융, 부실채권의 누적, 노동시작의 경직, 복지부동 등)의 구조적 모순은 기업 전반에 만연된 현상이었지만 특히 수출분야에 있어서의 타격은 컸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의 무관심 도는 방치때문에 국제수지 적자의 폭은 더욱 증대되었음.
(마)외채의 증대와 외채관리의 부실
_90년부터 96년까지의 경상수지 누적적자가 468억달러에 달하고 기업의 투자확대로 외자조달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로 인해 외국인직접투자가 억제됨에 따라 필요한 외국자본을 주로 차입을 통해 조달하게 됨으로써 외채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음. 총고정자본 형성중 외국인 직접투자비중은 우리나라의 경우 1%수준(96년기준)으로 UN조사대상국 52개국 전체평균 7%, 동남아시아 9개국 평균 8.1%, 23개 선진국 평균 5.7%보다 크게 낮은 수준임.
_김영삼정부 출범당시 92년말 428억달러이던 총외채 규모가 97년 11월말 1,569억달러로 3.6배나 증가하였으며, 특히 당시 우리 기업들의 해외현지 금융 530억달러(97년말 현재)를 포함하면 총외채는 2,100억달러를 훨씬 초과하였으며, 또한 외채의 63%(97년 6월말)가 1년이내의 단기외채로 외채구조가 극히 불건전하였음.
_이로 인하여 환란이 더 가속화되었으며, 단기채의 일시적이고 동시적인 상환요구(기한연장 불용)으로 국제지불불능(default)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음.
_이와같이 단기외채가 급증한 것은 정부가 금융기관의 중장기 융자재원조달 의무비율을 70%에서 50%로 하향조정하고, 금융기관의 해외점포에 대한 의무비율을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단기차입을 조장하였기 때문임.
(바)외부적 원인의 작용
_90년대 들어와 각국의 금융자율화와 개방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국제자본이동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아시아지역으로의 자본유입이 두드러지게 증가하였음. 아시아지역에의 과도한 자본유입은 이들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자산가격 상승 및 서비스 산업에의 투자확대 등을 통한 과도한 소비 증가로 고성장과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였음.
_그러나 90년대 중반들어 아시아 각국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유동성 부족을 초래하였음. 특히 일본의 불황의 장기화와 금융기관 부실심화로 일본 금융기관의 자금회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 아시아 지역의 유동성 부족을 심화시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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