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병용 필요하다
1999/02/10(수) 18:37
정부가 공문서와 도로표지판 등에 한자 병기를 추진키로 함으로써 학계와 시민 사이에 찬반 양론이 뜨겁게 일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9일 전통문화의 이해, 한자문화권 국가 간의 교류와 관광증진에 부응키 위해 한자 병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글학회와 한국 바른말 연구회 등은 10일 『문광부 방침은 한글전용법률을 폐지하기 위한 음모』라는 선언문을 내고 반대집회를 가졌다. 또 PC통신망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가열됨에 따라 「한글전용」대 「국한혼용」 논쟁이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한글학회 등은 『문광부가 국어심의회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안을 국무회의에 서둘러 보고하고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정식 절차를 무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광부는 『국어심의회는 자문기관인데 8일의 회의에서도 한자 병용을 주장하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한자 병기(괄호안 표기)나 혼용(단독 표기)의 문제는 국가의 어문정책 및 교육에 관련된 중요사항이므로 문광부가 좀더 신중히 결정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대적·주변적 여건은 어문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고전과의 단절문제 등은 차치하더라도, 지금 세계는 세계화와 함께 강한 지역·문화적 블록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의 등장과 올초부터 유럽에서 사용된 유로화 등이 그 예다.
우리는 한글전용에 치우쳐 중국 일본 등이 포함된 동북아 문화·경제권에서 고립돼서는 안된다. 북한조차 고립의 고통을 맛본 후 90년대 들어 초등학교부터 2,000자의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해방 후 진행돼온 한글화와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컴퓨터화 등을 고려할 때, 공문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는 보다 넓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병기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중고교 교육에서는 현재의 교육용 한자(1,800자)를 재조정해서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도로표지판에도 한자가 병기돼야 한다고 본다.
최근 교육방송이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한자교육 의무화에 찬성하는 이가 76%, 반대가 24%였고, 한자사용의 「필요성을 인식한다」(64%)는 의견이 「인식하지 않는다」(23%) 보다 많았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425만명 중 한자문화권의 국민이 71.3%를 차지한 것은 도로표지판에 한자 병기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한자 병용 논의와 관련해서 강조할 것은 우리 말과 글을 아름답게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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