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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리법에 바란다

입력
1999.02.11 00:00
0 0

기업정리법에 바란다

1999/02/10(수) 18:36

정부가 회사정리법·화의법·파산법등 기업정리 관련 법률의 개정시안을 발표했다. 부실기업은 신속히 갱생 또는 퇴출시키고,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명예회장의 부실경영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기업 구조조정을 더욱 촉진하자는 것이다.

이번 기업정리 관련 법 개정시안은 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소유구조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퇴출 장벽을 크게 낮춰 지금까지의 기업경영 관행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돼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우리 경제는 세계은행등에서도 지적했듯이 진입 장벽 못지않게 퇴출 장벽 또한 높다. 살릴 기업은 제때 못살리고, 사라져야 할 기업은 그대로 방치해 구조조정이 지연됐다. 그 결과 새로운 창업은 어렵게 되고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사회적 비용은 더 들어갔다. 미국등 선진국에서 보듯 창업과 퇴출의 끝없는 반복 속에 경제의 역동성이 살아나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제도적으로 이같은 신진대사를 막아온 셈이다.

현행 제도적 맹점을 악용하는 기업주들도 많았다. 대그룹들은 지난해 총수가 계열사 이사로 등재해 일단 책임경영체제를 갖추었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이사가 아닌 오너가 명예회장 직함을 가지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의 이익을 거의 독차지하면서도 경영을 잘못해 회사가 망할 경우 일반주주들과 거래 금융기관 및 업체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는데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는 모순이 여기서 생겼다.

개정시안은 도산위기에 처한 기업이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하면 1개월이내에 개시여부를 결정하며, 개시결정 후 조사를 거쳐 회생불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파산선고를 내려 퇴출시키기로 했다. 기업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니 만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있으나 이는 평상시에나 가능하다. 현 상황은 비상시기다. 기업의 부실은 곧바로 금융기관에 큰 타격을 줘 국가경제를 위기로까지 몰고갈 우려가 있고, 이같은 가능성은 이미 97년말 IMF행으로 증명됐다.

때문에 이번 법 개정안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기업 퇴출과 갱생의 판단 기준 등을 만들지 못한다면 더 큰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 살릴 기업은 빨리 살리고 가망없는 업체는 빨리 퇴출시켜야 하지만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정부는 공청회등을 거치면서 충분한 의견수렴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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