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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새천년 문앞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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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새천년 문앞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

입력
1999.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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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새천년 문앞서 다시 생각하는 '시간'

1999/02/09(화) 17:31

세번째 천년을 코앞에 둔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에 대한 질문이 점점 간절해지고 절박해지고 있다. 시간이 현대인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끌리오가 출판한 「시간의 종말」과 문학동네의 「시간의 미래」, 석필의 「시간」은 이같은 세기말적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책들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며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굴드,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이며 종교사가인 장 들뤼모, 프랑스 최고의 동양학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장 클로드 키리에르, 그리고 이탈리아 볼로냐대 석좌교수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시간의 종말」을 통해 시간·밀레니엄·종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스티븐 제이굴드는 세기 말에 더욱 극성을 부리는 종말론과 책력(冊曆)의 역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2000년이 매우 특별한 해이기는 하지만 인간들이 편의적으로 정한 책력의 역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성서의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종말론도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위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장 들뤼모도 「요한계시록」을 재해석했다. 요한계시록은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주기보다는 새로운 천년을 위한 위안과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장 클로드 카리에르는 동양인들이 갖고 있는 순환적인 시간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며 시간의 시작과 종말은 성서의 직선적인 시간관에서 비롯된 개념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다가오는 밀레니엄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세번째 천년의 도래에 불안해하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 천년에 대한 공포는 언론에 의해 조작됐을 뿐 사람들은 오히려 축제처럼 새천년을 맞았다는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학자 중의 한사람인 라인하르트 고젤렉은 「시간의 미래」에서 「역사적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역사적 시간이란 자연 시간과 구별되는 특수한 개념으로 기대지평과 경험공간이 불일치하는 지극히 비극적인 시간 구조이다.

미래의 세계는 현재나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리라는 기대 속에서 시간이 갖는 동질성과 등가성이 파괴된다. 새로움이 낡음을 지속적으로 청산해 경험은 적어지고 기대는 커진다. 결국 인간이 갈구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와 참혹한 파괴, 사람들은 진보의 희망만을 되풀이해 노래해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칼하인츠 A. 가이슬러 독일 뮌헨대 철학과 교수가 지은 「시간」은 현대인들에게 바쁘고 빠르고 분주한 「시간경영적 삶」에서 탈출하도록 권유한다.

「느림」은 창조적인 사고와 사고의 창조적인 발전의 전제로 보고 있는 그는 당대의 특징을 규정짓는 문학작품과 철학서 등을 적절히 인용해 가며 기다림과 휴식 멈춤 게으름의 미덕을 설파하고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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