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답변] 정경유착 시인 행간곳곳 뇌관
1999/02/10(수) 07:42
정태수(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이 9일 국회 「IMF환란조사특위」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의 행간을 자세히 뜯어 보면 곳곳에 뇌관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른보면 정씨는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金泳三)후보에게「150억원」을 건네줬다는 4일의 증인신문내용외에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교묘히 빠져나가 부실·면피성 답변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할 것같다.
그러나 답변 내용중에는 민감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내비친 구석이 상당하다.
정씨는 우선 92년 대선 1주일전 하얏트호텔에서 김전대통령에게 100억원을 직접 전달할 때 보증수표를 사용했다면서 『때문에 추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친절하게」부연설명을 달았다. 이 대목은 4일 청문회에서 정씨의 폭로를 유도한 국민회의 김원길(金元吉)정책위의장이 『보증수표 번호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사실상의 물증을 제시한 것이다.
정씨는 그러나 수표추적 및 사실확인의 부담을 여권에 떠넘기는 노회함을 보였다.
김전대통령에게 전달된 대선자금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당좌대월금」이냐는 질의에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한 것은 그의 답변 스타일로 볼 때 사실상의 시인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기업이 특혜대출을 받아 정치권에 뇌물로 제공하는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김전대통령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씨는 김전대통령이 은행대출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피해 나갔다.
정씨는 대선자금 전달 당시 이형구(李炯九)전산업은행총재와 동행했다는 주장은 부인했으나 안내자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 안내자가 과연 누구일지도 관심사다. 또 정씨는 92년 대선자금의 제공이 『잘못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때는 누구나 대선자금을 지원하는 줄 알았다』고 답변했다. 이는 92년 대선당시에 자신외에도 많은 기업인들이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씨가 이미 노출된 것 이외에는 정치자금을 전달한 인사가 없다고 답변했으면서도 서면답변 초반에서는 『검찰에서 밝혀진 것은 떡값의 일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엇갈린 진술을 한 것도 두고두고 정치권에 여진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고태성기자 tsgo@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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