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 초기시 역해] 시성의 젊은날 절창 한곳에
1999/02/09(화) 18:20
「번(番+羽)手作雲覆手雨 紛分輕薄何須數 君不見管鮑貧時交 此道今人棄如士」(손바닥을 젖혀 구름을 짓고, 손바닥을 덮어 비를 내린다/어지러이 경박함, 어찌 헤아릴 것인가/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의 가난한 시절의 사귐을/이러한 도리를 지금 사람들은 흙처럼 버린다).
시성(詩聖) 두보(杜甫·712~770)의 초기시 「빈교행(貧交行)」이다. 고금을 통틀어 중국 시문학사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그는 인간 삶의 진실을 애끓는 선율과 시어 속에 아로새긴 천하의 명시인이었다.
이영주 서울대, 박석 상명대, 이석형 중앙대, 김만원 강릉대, 김성곤 방송통신대 교수 등 중견 중문학자 5명은 최근 두보의 초기시 100편을 완역해 책으로 엮어냈다. 솔출판사에서 나온 「두보 초기시 역해」가 그것이다. 두보의 초기시란 그가 44세때 일어난 안녹산(安祿山)의 난(756년) 이전에 지은 작품들을 말한다.
93년부터 6년 동안 공들여 만든 이 책은 제대로 된 두보시 역해라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았던 두보의 초기시를 완역했을 뿐 아니라 중국 송대의 「구가집주두시(九家集注杜詩)」, 명대의 「두억(杜臆)」, 청대의 「두시상주(杜詩詳註)」, 조선의 「두시언해(杜詩諺解)」등 역대 주석서들도 빠짐없이 번역해 덧붙였다.
알기쉬운 우리말로 완역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이 책은 두보 문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서로 중국이나 두보 연구에 앞서 있는 일본에서도 나온 어느 책과도 비교 할 수 없는 귀중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까지 두보 연구는 말기 시에 집중, 중복돼 왔고 그나마도 단순 번역서에 그쳐 아쉬움이 많았다.
이영주 교수등은 단순한 주석서가 아니라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초심자에게도 친근함을 주는 두보 연구서를 만들자는데 마음이 맞아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이들은 매주 한차례씩 함께 모여 시 한수 한수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번역 작업을 진행해왔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던 두보는 인생의 대부분을 유랑생활로 곤궁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고고한 이상을 시로 담아낼 수 있었다. 그가 남긴 1,500여수의 시는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선비들에게도 애창됐다.
이영주 교수는 『이번에 나온 책은 우리들이 계획한 작업의 1차적인 결과물』이라며 『앞으로 10년을 잡고 두보의 중기, 말기 시도 모두 완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철훈기자 ch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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