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 한자병기추진] 학계 와글와글 국민 어리둥절
1999/02/09(화) 17:34
문화관광부가 9일 갑작스럽게 행정부 공문서·도로표지 한자병기(괄호안 표기) 추진 방침을 밝혀 학계에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국민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9일 신낙균(申樂均)문화관광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한자 병용 방안을 보고하자 장관들의 입장부터 여러 갈래로 갈렸다. A장관은 반대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기본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우리말로 어려운 한자를 풀어쓰는 노력이 상당히 진전됐고 한자 교육의 공백도 있어 공문서 병기는 성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B장관이 찬성 의견을 밝히며 신장관을 거들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받아들인 이번 보고는 큰 진전입니다. 문제는 병용이나 혼용(노출표기)이냐 인데 각 분야에서 한자 혼용이 이뤄지는 상황이어서 혼용 방안도 수용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한자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입시에서 한자 한문 시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어학계는 정부의 한자 병용 방침이 알려지자 한글학회(회장 허웅)와 한국어문회(이사장 이응백·李應百)를 중심으로 찬반이 명확히 갈렸다. 허회장은 정부의 『해방 후 한글 전용법으로 국민의 글살이가 한글 전용으로 기울어 고정된 마당에 정부가 공문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것은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자 혼용과 초등학생들의 한자 교육을 주장해 온 한국어문회 관계자는 『국어사전 수록어휘의 70%가 한자이고 한자는 조어력 함축성 축약력이 뛰어난 표의문자이니 한글과 한자의 적절한 조화는 이상적 문자 운용』이라고 찬성했다.
현재 우리나라 국어 문자정책의 근간은 한글 전용. 정부는 48년 「대한민국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할 때는 한자를 병용할 수도 있다」는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했으며, 한 차례도 법개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법의 단서조항을 활용, 한글 전용_한자 혼용_한자 병기 순으로 정책이 바뀌어 왔다.
73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는 한글전용, 중고교 교과서는 한자 병용 원칙에 따라 인명 지명 등에 한자 병기를 하고 있다. 한글학회는 지난해 2월말 한글전용 강화와 초등학교의 변칙적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건의문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냈다. 국어어문회 등은 이에 며칠 일 앞서 국회에 보낸 건의문을 통해 한글 전용법 폐지와 초등학교 한자 교육 실시를 주장했다.
참여연대의 김기식(金起式)정책실장은 『국어 정책은 전 국민적 관심사』라며 『정부가 일을 벌여 놓고 우왕좌왕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여론수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사봉기자 sesi@hankookilbo.co.kr ·이영섭기자 young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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