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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국은행, 다시 태어나야

입력
1999.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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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국은행, 다시 태어나야

1999/02/08(월) 16:25

「불, 수레바퀴, 중앙은행」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경제석학 폴 A 새뮤얼슨박사(전MIT대교수)는 인류의 3대 발명품으로 이 세개를 들었다. 불은 인류가 원시상태를 면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수레바퀴는 물류혁명의 원천이다. 만약 불이나 수레바퀴가 없었더라면 인류가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중앙은행이다. 새뮤얼슨교수는 왜 중앙은행을 인류 3대 발명품의 반열에 올려 놓았을까. 대경제학자로서 자본주의체제의 발전에 있어 중앙은행의 기능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기 위해 중앙은행을 불과 수레바퀴에 비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독일의 연방은행(분데스방크), 영국의 영란은행(뱅크 오브 잉글랜드), 일본의 일본은행 …. 한국에는 금융통화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있다. 금융위는 통화신용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이고 한국은행은 금융위의 사무국격이다. 새뮤얼슨박사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무척 불행한 나라다. 중앙은행다운 중앙은행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국회 국제통화기금(IMF)경제청문회에서 「유치한 논쟁」을 벌였다. 한은은 환란(換亂)전에 당시 재정경제원에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수차례 제출했다고 밝혔고, 재경부 관계자들은 그런 보고서를 본 기억이 없다고 되받아쳤다. 둘다 거짓은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한은은 틀림없이 그런 보고서를 작성, 재경원에 올렸을 것이다. 한은은 수많은 보고서를 생산, 관계요로에 제출한다. 외환위기 경고보고서도 수많은 보고서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국가존위에 관한 내용인데 여느 보고서처럼 관행적으로 처리되고 만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상태를 진단하던중 생명과 직결된 암징후를 발견하고서도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과 같다. 암은 다른 병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한은은 지난해 환란수습과정에서도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고금리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이는데도 고집스럽게 고금리를 견지했다. 그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한은은 고금리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IMF도 같은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어떤가. IMF는 한국에 있어서의 고금리정책은 옳지 않았다고 과오를 시인했다. 그러나 한은은 지금까지 「반성의 말」이 없다. 한은이 국가위기관리(환란수습)국면에서 과연 무슨 역할을 했나.

한은은 하루빨리 무책임주의와 면피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IMF사태를 계기로 세상이 180도 달라졌는데도 한은은 그대로인 것 같아 안타깝다. 정치권에서부터 정부부문과 공기업, 은행 증권 등 금융권, 재벌을 비롯한 산업계, 심지어는 노동계까지 환골탈태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조직이 바뀌고, 사람이 교체(물갈이)되고, 사고(思考)가 달라졌는데도 한은만 「외로운 섬」으로 남아 있다.

정부부처 금융감독원 금융기관 등 대부분의 기관들이 외부전문가를 영입해서라도 「외양간을 고치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한은만 순혈주의(純血主義)를 고집하고 있다. 정권교체로 총재만 바뀌었을 뿐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커녕 소잃고 외양간의 관리인만 바꾸데 그치고 만 것이다. 독립인가 고립인가. 한은은 그동안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독립운동을 했던가.

금융통화위원회와 한국은행은 「한국의 중앙은행」으로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중앙은행은 권위를 먹고 산다. 권위를 확보하려면 남보다도 더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에 있어 「은행의 은행」인 한국은행이 일반은행보다 앞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은행이 바로 서야 한국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 한국국민들도 이제 인류 3대발명품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백만 경제부장 million@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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