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여대생] "40세 넘어도 못배운 한 풀래요"
1999/02/08(월) 17:57
『이제는 멋도 좀 부리고 화장도 할래요. 다음달부터는 우리도 여대생이 거든요』
10일 서울 송파구 한림여자실업중고를 졸업하는 이영희(李榮姬·41·여)씨는 요즘 주부동급생들과 신세대 패션과 기호에 대한 얘기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꿈에 그리던 고교졸업장을 받게된 것은 물론, 다음달엔 강남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93년에 세워진 이 학교 올해 졸업생은 170여명. 40, 50대가 대부분이지만 70대 할머니도 만학의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가난과 사회적 통념에 밀려 교육혜택을 받지 못했다가 뒤늦게 무학의 한을 풀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억척들이다.
그중에서도 이씨를 비롯해 고점순(43) 박연우(50) 박영화(41)씨 등 4명은 93년 입학한 이후 중·고교과정 6년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개근했고 모두 다음달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지금은 중소기업대표인 남편(54)과 대학생인 두아들을 둔 이씨지만 어릴적엔 가난한 농부의 9남매의 맏딸이었다. 이씨는 『먹을 것도 없던 시절에 감히 공부하겠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며 『앞으로 어려운 고학생들을 도울 길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고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들의 학비를 벌기위해 의류재봉공장에 취직할 수 밖에 없었다. 고씨는 『저녁 퇴근길에 세련된 여대생들을 보며 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며 자신의 대학진학사실을 믿기지 않아 했다. 고씨는 방송통신대 가정과에 진학, 한국고전의상을 공부할 예정이다.
경원전문대에 진학하게 된 박연우씨도 『일본어 통역가이드 자격시험까지 볼 만큼 열심히 공부했지만 초등학교 학력이라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며 『지난해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남편은 학교에 가도록 해줬다』며 울먹였다.
이들은 고교졸업장을 받는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학력이 절대적 평가기준이 돼서는 안된다』고 그릇된 사회풍토에 대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담임 정현수(鄭賢洙·41·여)씨는 『수업을 받는 주부학생들의 진지한 눈빛은 이들이 얼마나 공부에 목말라했는지를 느끼게 해줬다』며 『비록 내가 교사지만 때론 같은 주부로서 오히려 배울게 더 많았다』고 말했다. 이주훈기자 jun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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