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견 전격취소 배경] 칼빼려다 다시넣은 YS
1999/02/09(화) 11:06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8일 여권을 향해 정면역공 태세를 취했다가 돌연 「칼날」을 거두어 들인 배경은 무엇일까.
김전대통령은 당초 9일 아침 9시 상도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태수(鄭泰守)전한보총회장의 150억원 대선자금 제공 증언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육성(肉聲)으로 밝힐 예정이었으나, 8일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돌연 기자회견을 연기키로 결정했다.
김전대통령은 이날 밤 상도동 자택에서 김광일(金光一) 김용태(金瑢泰)전청와대 비서실장, 이원종(李源宗) 조홍래(趙洪來)전정무수석, 김정남(金正男)전교문수석, 이영래(李永來)전행정수석, 유도재(劉度在)전총무수석 등 대통령 재임시 측근들과 6시간 가까운 마라톤 회의를 거친 끝에 『9일 아침으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취소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상도동 관계자는 『회의에 참석했던 12명의 전임 비서관중 대다수가 회견연기를 건의했다』며 『김전대통령은 고심끝에 이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김전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전회장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정씨의 경제 청문회 증언은 여권이 형집행정지 등을 미끼로 정씨를 회유·협박해 끌어낸 거짓증언』이라는 주장을 거듭 펼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전대통령은 또 『정씨의 증언은 정권말기에나 하는 정치공작으로, 현 정권의 비민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란 요지의 발언도 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상도동의 한 인사는 이와관련, 『김전대통령은 정씨의 청문회 증언(4일) 이후 고심의 나날을 보내왔다』면서 『특히 정씨의 증언이 정치권은 물론 일반국민에게까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 것처럼 각인되는 데 대해 엄청난 분노를 표해 왔다』고 말했다.
김전대통령은 이와함께 국회 529호실 사건, 도청·감청시비, 각종 풍(風)사건 등을 통해 현 정권의 비민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주장한 뒤 이를 문민정부의 민주적 성과에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경제실정 희석을 시도할 복안이었다는 후문이다.
김전대통령이 그럼에도 궤도를 수정, 기자회견을 연기한 것은 몇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김전대통령의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진 뒤 여권의 모든 채널이 가동됐고,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는 전언이다.
또 김전대통령이 과거 야당의 대선자금 등을 건드릴 경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 뿐더러 여권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까지 조기에 써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성급한 강공책이 자칫 여론의 악화를 부를 수 있다는 신중론이 막판에 대세를 이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홍희곤기자 hghong@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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