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세평] 생각을 바꾸자(박승.중앙대교수)
1999/02/08(월) 18:06
우리는 지금 국난을 극복하고 선진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을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제는 우리들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이 일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어떠한 개혁노력도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가치관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첫째로 보편주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보편주의란 사회 전체의 보편적 이익의 틀 속에서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질서이다. 이것이 이른바 선진국들의 보편적 개인주의 문화이다.
우리의 가치관은 정실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 쪽이다. 이것은 나와 내 가족, 동향(同鄕)사람, 학교동문 등 혈연·지연·학연에 의한 동질적 소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질서를 말한다. 따라서 그 소집단에 소속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며 전체 사회에는 분열과 갈등을 낳게 된다. 예컨대 선진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이 사람에게 되는 일은 저 사람에게도 되고 이 사람에게 안되는 일은 저 사람에게도 안된다. 고향사람이 오면 해주고 타향사람이 오면 안해주는 일이 없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자기와는 무관한 일에 대한 고발정신이 투철하다. 자동차에 약간의 접촉사고를 낸 뺑소니도 고발하고 어린이를 때리는 옆집 부모도 고발한다. 이처럼 사회규범에 어긋나는 행위의 고발이 생활화해 그 사건에 증인으로 법원에 다니는 것을 시민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둘째로 합리주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합리주의란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비용과 성과를 따져서 비용을 최소화하고 성과를 최대화하는 자세를 말한다. 절약하고 시간을 단축하고 힘을 덜 들이고 품질을 좋게 하는 것이 합리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합리주의는 바로 효율과 실용주의이며 과학과 이치를 기본으로 하는 가치관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합리주의 정신이 부족하다. 유교적인 중용사상(中庸思想)에 의한 관행이나 실질보다 형식을 좇는 전통적 의식구조가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생활에 있어서는 나의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른, 그리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소비가 많다. 여름휴가철에 서울에서 속초까지 16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그러한 휴가는 아예 가지 않을 것이다.
셋째로 개방주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남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남에게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하며 남에게서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남에게도 이익을 주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가 교류하게 되면 서로 이익이 커지는 확산효과(擴散效果)와 약자의 이익이 침해되는 역류효과(逆流效果)가 있게 마련인데 오늘의 시대는 확산효과가 지배적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남의 장점을 모방하고 나의 단점을 보완하며 남과 더불어 분업하는 이익을 얻으려면 개방주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발전에 성공한 나라들은 모두 개방체제 속에서 발전을 추구한 나라들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 서울시의 인구가 1,000만이 넘는데 외국인이 밀집해 사는 타운이 없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끝으로 우리는 다원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다원적 가치관이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회의 모든 기능과 직업을 수식적 상하관계 또는 귀천(貴賤)관계로 보지 않고 수평관계로 보는 가치관이다. 이런 점에서 다원적 가치관은 곧 민주적 또는 시민적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의 농경문화와 대가족제도 그리고 유교문화의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는 권위주의적이고 획일적인 가치관이 보편화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구조는 유연성(柔軟性)이 부족하며 출세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직업에 귀천을 따지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라 할 것이다.
朴 昇·중앙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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