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면서] 한국 노인과의 만남(천쓰허 중국교수)
1999/02/07(일) 16:38
1월14일 나는 수안보를 다녀오는 길에 천안에 들렀다. 김씨성을 가진 한 한국노인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그가 삼년 전 상하이(上海)로 여행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를 접대할 기회가 있었다. 그후 지금까지 계속 소식을 주고 받아온 터였다.
우리 일행은 독립기념관 참관을 마치고 천안시내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곳의 그 노인댁을 찾아갔다. 세 칸짜리 작은 집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몇마디 인사말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화는 통역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나를 대접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시는 할머니의 모습과 그 노인의 컬컬한 노성(老聲)은 나에게 순간 할아버지와 화롯불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던 고향집에 와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보학(譜學)에 해박한 지식과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대화중에 중국도 한국에서처럼 제사를 지내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사실 농촌 일부지역에서만 이러한 제사의 풍습이 남아 있을 뿐 대도시 지역에서는 제사라는 풍습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 중국에도 족보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나는 『아마 중국농촌에는 아직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처럼 이렇게 조부때부터 고향을 떠나 낯선 상해로 온 사람들은 이미 뿌리가 없는 사람이 되었지요』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한국인 일행에게 공산주의가 제사와 족보의 전통을 없애 버렸는지 묻는 것 같았다. 나는 통역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때문에 말을 아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국은 매우 특수한 나라이다. 한국을 제외한 대다수 제3세계국가들은 식민지에서 세계화와 현대화로 향하는 과정에서 민족적 특징을 잃어버렸다. 한국이 전통을 유지하고 그 전통을 중심으로 응집하는데 대해 부러워하고 있답니다』.
올해로 78세인 그의 따스한 대접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이 탄 차는 어느새 고속도로를 따라 짙은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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