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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연다] 21세기 철학의 화두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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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연다] 21세기 철학의 화두 '생태주의'

입력
1999.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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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을 연다] 21세기 철학의 화두 '생태주의'

1999/02/07(일) 17:13

19세기말 오토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을 예견했다. 20세기말 인류는 동서를 떠나 「지구의 황혼」을 느낀다. 환경파괴에 따른 생태위기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상황이다. 난파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우주선 지구호」의 운명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명제 앞에서 철학은 책임을 느끼게 됐다. 철학은 왜, 무엇이 잘못되었나, 어디로 가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반성은 데카르트적 이성에 바탕을 둔 근대성 비판에서 출발한다. 인식의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는 데카르트적 합리성은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달이라는 개가를 올렸지만 동시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인류 절멸의 위기를 초래했다. 간디는 일찌기 서구식 산업주의가 인류 모두에게 최악의 저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 경고는 이제 현실이 됐다.

여기서 생태철학이 등장한다. 기존 사유의 틀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생태철학은 인간중심에서 생태중심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데카르르 이후의 철학에서 자연은 말이 없고 이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객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총체적 위기 앞에서 생태철학은 그동안 대상으로만 존재하던 자연·환경을 인식주체로 끌어들인다. 이 점에서 생태철학은 환경윤리학과 구분된다. 환경윤리학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이야기하지만 생태철학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묶는 세계관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생태주의는 성장 제일주의적 산업문명을 넘어서는 탈근대적 문명전환운동을 지향한다. 지배가 아닌 공존,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 시장 경쟁이 아닌 나눔의 공동체가 목표다. 근대 산업문명의 온갖 폐해, 예컨대 지배와 복종, 억압과 차별, 빈부격차, 환경파괴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적 사회를 이룩하려는 모색의 한 가운데에 생태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생태철학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것은 79년. 이 해에 영어권과 독일어권에서 나란히 출판된 존 패스모어의 「인간의 자연에 대한 책임」,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칙-기술시대의 생태윤리」가 시발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학자들 사이에 큰 관심으로 대두한 것은 93년께. 우리말로 우리학자가 쓴 최초의 생태철학서는 구승회(동국대 교수)의 95년판 「에코필로소피」였다. 구씨는 『소르본, 도쿄, 버클리를 휩쓴 68년 학생혁명이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자 서구의 좌파가 새로운 돌파구로 찾아낸 것이 생태철학』이라고 설명한다.

생태주의의 현재 지평은 좌에서 우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오른쪽에 「환경관리주의」와 「지속가능한 개발론」이 있다. 환경관리주의는 환경기술과 정책, 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92년 리우 세계환경회의 이후 유행어가 된 「지속가능한 개발론」은 지구의 자정·수용능력을 배려하는 점에서 환경관리주의보다 섬세한 편이지만 여전히 성장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왼쪽으로 이동하면 자본주의나 제국주의같은 불평등 사회구조를 환경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생태사회주의」가 있다. 이와 달리 「사회생태론」은 생태윤리적 공동체사회를 주장하는, 일종의 에코아나키즘(ecoanarchism)이다.

철학적으로 특히 주목할 것은 73년 노르웨이 철학자 안 네스를 중심으로 주창된 「심층생태론」(deep ecology)이다. 좌우를 떠나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이들은 인간중심주의를 공격하고 생물중심주의를 외친다. 인간을 위해 다른 생물종을 파괴할 수 없다며 극단적으로는 인간을 「지구의 암세포」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입장은 혁명적인 만큼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기존 가치관을 뿌리째 뒤집는 발상으로 유효하며 초기 녹색당 운동의 이념적 바탕이 됐다.

생태주의는 21세기 철학의 핵심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생태주의의 철학적 변용으로서 생태철학은 아직 당위론에 머물고 있다. 철학으로서 총체성을 얻기 위한 방법론은 모색단계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생태적 합리성을 배반하

는 파괴적 문명에 뿌리를 둔채 생태철학과 현실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 철학의 고민은 계속된다. 희망을 버릴 수 없으므로. 오미환기자 mhoh@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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