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 내부비판] "재판 눈치안보면 어리석은 판사다"
1999/02/05(금) 17:27
현직 부장판사가 최근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 판사와 변호사의 구조적인 유착 가능성 등 사법제도의 문제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심재륜(沈在淪)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에 이어 법원에서도 내부의 자성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어서 향후 사법개혁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원지법 문흥수(文興洙·사진)부장판사는 5일 법관 전용 통신망에 띄운 「진정한 사법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우리나라 사법부가 국민들이 바라는 만큼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현행 사법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문판사는 『언젠가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될 판사들이 변호사로부터 완전 독립하여 공정하게 재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마치 조만간 돌아가실 노인에게 누울 자리를 염두에 두지 말고 살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법원이 마치 거물변호사 양성소처럼 되어 있다』고 개탄했다.
문판사는 『연수원을 갓 수료한 변호사가 선임된 경우와 선배 법관 출신 변호사가 선임된 경우 동일한 자세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고 동료 판사들에게 물은 뒤 『인사권자와 친한 선배 변호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재판을 한다면 그것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리석은 재판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판사는 『대부분의 수뢰공직자들이 선고유예나 집행유예 등으로 선처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겠느냐』며 『거물급 변호사에게 약한 판사들이 그러한 재판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누가 믿겠느냐』고 물었다.
문판사는 또 법관 재임명제도와 승진제도가 판사들의 소신 재판을 방해하고 있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문판사는 『승진제도가 있는 한 법관들이 인사권자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며 『이러한 현실에서 판사들이 행정부나 입법부의 독단에 대해 튀는 판결을 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문판사는 또 『10년에 한번씩 판사들을 재임명하는 제도는 사실상 대법원장에 의한 법관 파면제도』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문판사는 이처럼 공개적인 글을 올리게 된데 대해 『최근 법조계에 대한 여론의 질타는 수십년간 누적된 국민들의 뿌리깊은 사법불신에 따른 것』이라며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 법원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썼다』고 밝혔다.
한편 93년4월 김종훈(金宗勳·현 변호사)당시 서울지법 판사는 법률신문에 개혁시대의 사법의 과제라는 글에서 사법부의 재산공개 등을 주장해 일부 판사들이 동조하는 등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었다. 김상철기자 sckim@hankookilbo.co.kr 박정철기자 parkjc@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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