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론] 인위적인 정계개편 안된다
1999/02/05(금) 18:05
요사이 정국은 여야간의 팽팽한 대치로 앞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쪽 청문회와 야당의 장외집회로 국회는 쪼개지고 여야간의 대화는 끊어진지 오래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은 며칠전 이른바 「동서화합형 정계개편」추진의사를 밝혀 또 한번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여 야당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하였지만, 양자간의 뿌리깊은 불신은 전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대치정국에는 근본적인 두 가지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나는 지역분할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부와 의회간 세력분포의 불균형이다. 지역 분할 정치는 오래된 일이라 현정부에 근본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그 또한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각계 고위층의 인사에서 이 문제는 두드러졌고, 최근의 검찰파동도 특정지역 출신에 화살이 겨냥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역분할 구도에서 가장 손해를 보고 있는 쪽은 역시 여권이다. 원내 제일당이 여전히 경상도 세력이 강한 한나라당이라 여권은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는 바와 같이 현 정부는 일종의 연립정부로 구성되어, 국민회의-자민련의 연대가 실질적인 제일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문회 개최도 가능했던 것이고, 한나라당이 실질적인 소수당으로 전락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구실로 정계개편을 시도하려는 것은 여권의 지나친 욕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권이 내세우는 정계개편의 명분은 지역분할 구도를 극복한 「동서화합 정치」를 정착시키자는 것인데, 만약 이것을 인위적으로 추진한다면 오히려 지역감정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 동서화합을 위해서는 인사나 예산배정 등과 같은 실질적인 면에서 오해받지 않을 행동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여권이 말하는 「동서화합 정계개편」이 야권에 의해 야당파괴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니 정국대치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행정부를 장악한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예사로 있는 일이다. 국정의 어려움 운운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 있다. 지금 상황이 여소야대의 상황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순리다. 국회에 막혀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면 국회가 통과시킬 수 있는 다른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정책의 성과가 그래서 낮아진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해봐야 아는 일이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의회민주주의의 불가피한 약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보다 더 큰 해악은 정부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당과 의회를 개조하겠다고 나서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현 정권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정계개편의 시도는 오히려 여권의 정권연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두 여당이 내각제개헌을 둘러싸고 복잡한 관계에 돌입하고 있고, 지역인구기반으로 볼 때 한나라당이 가장 강력한 현실에서, 여권의 정권연장을 위해서는 국민회의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이 필수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파적인 이해 때문에 온 나라가 또 한번의 홍역을 치를 수는 없다. 지역분할 구도에 입각한 정당정치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와 타협정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권력을 잡은 쪽이 권력을 미끼로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강행할 때, 그것이 국가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해악은 엄청날 것이다.
올해는 정가에 커다란 회오리가 불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 회오리는 또 한번 국민과 국가를 저버리고 좁은 당파적 투쟁에 몰두하는 지저분한 돌풍이 될 것 같아 저으기 걱정될 뿐이다.
김영명 金永明 한림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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