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씨 발언의 파장
1999/02/05(금) 17:50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92년 대통령선거때 민자당후보였던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150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혀 정치권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4일 열린 여당단독 환란청문회의 증언을 통해 정씨는 또 50억원의 대선자금을 별도로 민자당에도 줬다고 진술했다.
김 전대통령측이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나서 정씨 진술의 진위여부를 현시점에서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실이라면 그동안 한보사태를 둘러싸고 항간에 나돌았던 「깃털·몸통시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몸통」은 바로 김 전대통령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보를 둘러싼 정경유착 비리 진상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폭로한 측은 물증을 제시해야 하고, 혐의를 받는 측도 무고함을 떳떳하게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검찰조사나 97년 청문회과정을 통해 대선자금 제공사실을 잡아떼던 정씨가 갑자기 입을 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자물통」이나 「모르쇠」로 불리던 그의 꽉 다문 입을 열게 한 여권의 의도가 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여야간 대선자금 공방이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정국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여야 누구도 자유스럽지 못한 대선자금을 놓고 삿대질하는 일은 소모적 구태일 뿐이다. 환란원인을 규명해 교훈을 얻자는 청문회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만약 여권이 정씨 증언을 김 전대통령 압박수단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했다면 정치력 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자금에 관한 한 어느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야당이 김대중대통령의 대선자금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92년 대선자금에 관해 김 전대통령은 그간 수차에 걸쳐 「나라를 거덜낼 만큼의 엄청난 자금」이 소요됐음을 시인한바 있다.
여기에 대한 자성의 의미로 집권후엔 기업인들로 부터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번 청문회가 환란의 원인을 규명하고 교훈을 얻자는 취지인 만큼 진실을 밝히되 대선자금정쟁으로 비화시켜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문회를 보면서 우리는 정씨의 말을 어디까지 진실로 받아 들여야 할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 몇몇 의원들은 낯뜨거운 유도성질문으로 동료의원 봐주기에 나섰고, 정씨는 기다렸다는 듯 여권 유력인사들에 대해 면죄부성 답변을 했다. 그 광경은 청문회 공신력을 여지없이 실추시켰고 여당과 정씨의 빅딜설에 무게를 실어 줬다. 정씨의 폭탄선언이 환란규명의 단서가 될지 정략적인 이용물이 될지 주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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