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옷벗기기와 옷입히기
1999/02/05(금) 18:01
이종기변호사 비리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저 자신 검사가 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제 손으로 후배검사들의 사표를 받고…』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눈물을 닦았다.
한 조직의 총수로서 제 손으로 부하를 자르는 인간적인 아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사표를 내게 된 한 검사는 퇴임식에서 『온 사회가 흥청거릴 때도 나의 아내는 택시 한 번 타지 않았으며 나는 옷가지 하나 사주지 못했다』며 끝내 울먹였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은 비리의 경중에 따라 구속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검사에게는 이른바 「옷벗기기」인 사표가 최고의 징벌이었다. 검사 「옷벗기기」는 대단한 일인 모양이다. 후배들을 옷벗겼다고 검찰총장까지 울먹이지 않았던가. 당사자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옷벗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명예」가 문제라고.
IMF환란이후에 엄청난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었고, 지금도 불고 있다. 200만에 가까운 실업자가 생겼다. 각종 직장에서 그들도 「옷을 벗었다」. 그들중에는 평생을 한 직장에서, 한 직종에서 「명예」롭게 근무한 사람도 많다. 그들은 퇴직금과 몇달치의 월급을 위로금으로 받고 다른 직장이나 직업을 찾아 길거리를 떠돌고 있다.
그들에게도 택시 한 번 안 탄 아내가 있고 번듯한 상표가 붙은 옷 하나 못사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십여명이 아니라 수백명, 수천명까지 길거리로 내몬 그들의 상사도 울먹였을까. 검찰총장의 예로 본다면 그들의 상사는 통곡을 해도, 심지어 할복을 해도 시원찮을 일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옷을 벗은 검사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신분과 소득이 상식적으로 보장된 변호사라는 직업이 약속되어 있고, 애틋한 석별의 눈물로 전송받았으니까 말이다. 온 국민이 검사처럼 「옷벗기기」도 「옷벗기」도 어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라면 최소한 「옷입기」라도 가능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어떤 옷이건 말이다.
하응백·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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