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부장판사의 내부비판] 법원가 '파문'
1999/02/05(금) 17:52
수원지법 문흥수(文興洙·43)부장판사가 전관예우와 왜곡된 인사정책 등 사법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겸허한 자기반성이 담긴 글을 지난 4일 법관전용통신망에 띄우면서 법원에 파문이 일고있다.
이 글이 게재된 지 하룻만인 5일 조회건수가 벌써 1,000여건을 넘어서는가 하면 재경지원의 한 판사는 문부장판사의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의 글을 다시 통신망에 게재했다. 현재 우리나라 판사가 1,400여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전체 판사 중 70%가량이 이 글을 조회한 셈. 법원의 판사들은 이날 삼삼오오 모여 문부장판사의 글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서울지법의 한 소장판사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철저한 자기반성 속에서 털어놓을 수 있는 문부장판사의 용기에 힘을 얻었다』며 『최근 잇단 법조비리사건으로 침체돼있는 사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기 위해서라도 이를 시발점으로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도 『사법부가 그동안 자기반성없이 여론만을 질타해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검찰에서도 개혁의 움직임이 제기됐듯 법원도 무사안일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개혁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문부장판사의 원론적인 주장에는 동조하면서도 일부 내용과 제안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판사들도 많았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어떤 인사제도든지 간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있기 마련』이라며 『문부장판사가 법관의 종신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조직의 탄력성을 떨어뜨리고 복지부동하는 일부 판사들을 중심으로 부패현상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판사는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전관예우 등 드러나는 현상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법관의 사건부담이 지나치게 많다는데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며 『한달에 수백건씩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부실재판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 판사는 이어 『법관의 사건 수를 줄이거나 판사를 증원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고등법원 부장 등 일부 판사들은『법원 내부적으로 이같은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판결로써만 말한다」는 법관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리고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게다가 구체적인 대안도 없는 이같은 글을 발표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냐』며 심한 반발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영태기자 ytlee@hankookilbo.co.kr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