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들 피맺힌 절규] "명예롭게 지고싶소"
1999/02/04(목) 17:33
『40년 넘게 입을 닫고 지내왔지만 이제 먼저 간 전우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명예도 회복해야겠습니다. 남은 삶이 길지 않습니다』
50년대 정식 군번도, 계급도 없이 목숨 건 대북 극비공작임무를 수행했던 HID(국군첩보부대)출신 노병들이 4일 명예회복을 선언하고 나섰다. HID노병들은 『조국을 위해 수많은 작전에서 공을 세웠는데도 정규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유공자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5일 헌법소원을 제기키로 했다. 가슴에만 묻어온 피맺힌 사연을 당당하게 털어놓고 정부에 명예회복과 상응한 대우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실체없이 오랫동안 입으로만 떠돌던 「전설적」인 대북침투공작부대가 바로 이들 노병이 몸담았던 HID직할대 제1교육대. 한국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52년 12월 피끓는 월남청년들을 주축으로 창설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청수장에서 기수별로 3개월여의 특수훈련을 마치고 곧장 임무에 투입됐다.
1기 124명은 서해안 진남포와 취라도를 거점으로, 3기 73명은 동해안 원산앞 여도를 중심으로 공작 침투작전을 전개했고, 2기 125명은 평북 청천강유역에 투하됐다. 적지 한복판에서 폭파, 정보수집 등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희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해상침투도중 보트가 뒤집혀 대원 전원이 수장되고, 접선정보가 잘못돼 전원이 적지에서 자결하는 등 인명피해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군인으로서의 대우는 물론, 급여조차 받지않고 청춘을 불사른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생존전우회장 박부서(朴富緖·66·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54년 3월 인민군 대좌(대령)를 생포한 공로로 현역인 지구대장은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지만 정작 공을 세운 대원은 다른 임무 수행중 전사, 비무장지대내에 가매장됐다가 94년에야 생존전우들에 의해 안장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회에 복귀한 뒤에도 군적이 없다는 이유로 병역기피자나 도망자 신세가 됐고 일부는 다시 군에 끌려가 복무를 하기도 했다.
박씨 등이 89년부터 국방부와 정보사 관련자료 등을 샅샅이 뒤져 확인한 생존전우는 당초 5,000여명 중 겨우 20명. 박씨 등은 그동안 청와대와 국방부, 보훈처, 감사원, 총리실 등에 명예회복을 탄원해왔으나 『귀하는 군인신분이 아니었다』는 회신만 받았다. 그나마 93년에야 서울 성북구 우이동 정보사 교육대 영내에 「충령각(忠靈閣)」을 건립, 전사 및 사망자 4,964위의 위패를 봉안할 수 있었다.
이들의 무료변론을 맡고나선 법무법인 「태평양」측은 『워낙 세월이 흘러 걱정되긴 하지만 「국가유공자 예우등에 관한 법률 제6조(특별공로자추천)」등을 근거로 최선을 다해 이 분들의 명예를 되찾아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생전에 명예를 되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살아있는 전우들 태반이 70, 80대 고령이라 더이상 늦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ter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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