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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논단] 세계금융체제의 개편(윤영관.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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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논단] 세계금융체제의 개편(윤영관.서울대교수)

입력
199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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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논단] 세계금융체제의 개편(윤영관.서울대교수)

1999/02/03(수) 18:40

스위스의 작은 도시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이 2일 폐막됐다. 이번 포럼에는 각국에서 고위관료, 대기업총수,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대거 참석, 세계경제의 현안들에 대해 어느때 보다도 열띤 의견을 나누었다. 이번 포럼에 언론의 이목이 더욱 집중됐던 것은 그만큼 세계경제의 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주제들이 논의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사안은 바로 세계금융체제의 개편문제이다.

과거에도 금융위기는 있어 왔다. 그러나 1997년 이전의 위기들은 산발적이었고 국지적인 위기로 끝났다. 이번의 위기는 태국에서 시작되어 동남아 한국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금융시장들을 일년반도 안되는 사이에 휩쓸어 버렸다. 그래서 세계금융체제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IMF는 위기를 당한 국가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으니, 채무국의 금융체제, 산업지배구조, 경제정책 등을 건실하게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마치 독감에 걸린 환자를 놓고 독감바이러스가 돌아다니는 외부의 공해환경을 탓할 것이냐, 아니면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된 환자의 약한 체질을 탓할 것이냐의 문제와 비슷하다. 한국은 후자의 입장에 서서 강한 체질을 만들려고 고통스런 노력을 기울여왔다. 동일한 세계경제속에서도 대만같은 나라는 끄덕도 하지 않고 버티어왔다는 점, 그리고 외부환경은 우리 힘만으로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올바른 방향이었다. 그래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관치금융 거품이 가득낀 외형 위주의 재벌체제, 비효율적인 공공부문 등을 개혁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체질강화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외부의 공해환경도 고쳐야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공해환경을 고치는 문제를 가지고 다보스에서 논쟁들이 벌어졌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대표들은 기본적으로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성자본이 국제적으로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정부측 대표들은 소극적이다. 국제적 차원의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자본을 빌리는 개별 국가나 빌려주는 투자가들이 조심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소극적인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2차대전 후의 국제경제 질서의 틀을 짤 때 미국과 영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무역과는 달리 자본의 흐름은 국제적으로 자유로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1930년대 세계공황의 악몽이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70년대를 넘어서면서 미국은 금융산업 부문에서 최고의 비교우위를 확보했다. 그러자 이를 활용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세계금융시장의 개방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한 개방의 물결이 전 세계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이것을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또는 「금융의 세계화」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처럼 금융의 세계화는 금융패권국 미국의 국익추구가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금융자본가들,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재무부 등 관료들 입장에서는 세계자본의 이동을 규제하는 만큼 이윤추구의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에 소극적인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세계경제의 위기가 급박해져야만 이들은 움직일 것인가.

우리 정부는 내부 개혁을 보다 확실하게 다져나가는 것이 일차적인 급선무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외적으로 세계금융체제의 개혁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고 이를 위해 한 몫을 담당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윤영관 尹永寬·서울대교수·국제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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