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정치회담 제의 속뜻
1999/02/04(목) 08:02
북한이 3일 「정부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통해 채택한 남북고위급 정치회담 제의는 몇가지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회담성사를 위한 명백한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북측 제의는 가까운 시일내에 남북대화 재개를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편지에서 고위급 정치회담 개최시기를 올 하반기로 명시했다. 이는 지난달 북한 농업기반 지원과 이산가족을 논의하기 위한 당국간회담을 열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제의에 대해 「당장은 어렵다」고 답한 것이다. 북한은 올 상반기중 북한_미국간 금창리 협상등 북미 현안에 주력하고 그 이후에나 당국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북측의 이같은 태도는 당분간은 대미관계 개선에 주력, 주변여건을 유리하게 조성한뒤 남북관계에 본격적으로 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남측으로부터 조건없이 비료 지원을 얻어내겠다는 속셈도 깔고있는 듯 하다.
북의 이번 제의는 또 우리측의 남북대화를 공식제의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공세적인 측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특별한 대화제의 형식을 빌지 않고 연례적인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통해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배경이다.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이번 제의를 통해 몇가지 진일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선 북측은 연합회의를 통해 「남북정치협상회의」 「민족통일협상회의」등 모호한 개념의 회담 대신 고위급정치회담이라는 당국대화를 명시했다. 북한은 예년에도 각계 대표에게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지만 이번의 경우는 당국을 대화상대로 명시한 점이 다르다.
서신의 문맥을 살펴본 당국자들은 또 외세와의 공조파기와 합동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운동과 활동의 보장등 북의 전제조건 요구도 그다지 완강해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북측이 고위급회담의 의제로 우리가 줄곧 요구해온 북기본합의서 이행대책, 남북교류협력, 이산가족등의 의제를 고위급회담을 통해 논의할수 있다고 밝힌 것도 정부는 평가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서신이 김대통령의 제의이후 북측의 최초 반응이라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이에따라 정부는 4일 통일부 대변인을 논평을 통해 북한 농업지원과 이산가족 협의를 위해 조속한 시일내에 당국회담을 개최하자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국가안정보장회의를 통해 북한제의에 대한 후속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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