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검찰의 난상토론
1999/02/03(수) 18:09
『검찰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수뇌부가 사태의 책임을 지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수뇌부가 바뀐다고 해서 우리가 저질렀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2일 대검에서 열린 전국 지검차장검사 및 평검사 회의는 대전수임비리 사건수사가 소장검사들의 집단 서명으로까지 번지는 과정에서 농축된 조직 갈등과 가치의 충돌이 여과 없이 표출된 자리였다.
검찰사상 초유의 검사집단 행동을 조기 진화하기 위해 마련된 회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한번 물꼬를 트기 시작한 수뇌부와 평검사들의 난상토론은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질 만큼 뜨거웠다고 한다.
상명하복의 명령이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조직을 움직이는 검찰에서 내부 문제를 토론하는 공간이 마련된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상부 보고와 결재를 수없이 반복하며 조직의 논리를 따르는데 길들여진 검사들이 수뇌부와 대등한 입장에서 조직 총수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 날은 감히 「검찰 혁명의 날 」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젊은 검사와 수뇌부의 「의미있는」 갈등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마음 한 구석에 일말의 불안감이 찾아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오늘 검찰의 분열상이 공권력의 누수와 법 집행력의 상실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일 것이다. 국가의 공권력이 적절하게 발휘돼야 할 위기의 순간에 마냥 수뇌부와 평검사가 머리를 맞대고 이견을 조율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이번 일련의 파동은 검찰이 「국민의 검찰」로서 거듭나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례가 반복돼서는 안된다. 검찰이 무너지면 국가기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검찰은 협의체가 아니다.
사회부 김승일기자 ksi8101@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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