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헌 장편 `제3의 길' 지식인.정치인들에 화제
1999/02/02(화) 17:54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읽으면 한국이 한 보름 정도 진보할지 모르지요. 그러나 나의 「제3의 사회」를 읽으면 적어도 10년은 진보합니다』
서울대음대 성악과 졸업, 「남산 살리기」이벤트 기획, 연극 「털없는 원숭이」공연, 97년 일간지 신춘문예 희곡 당선, 국제금융회사 투자브로커로 6년여 활동, 장편소설 「제3의 사회」 출간.
이헌(41)씨의 특이한 약력이다. 그가 쓴 소설 「제3의 사회」(정보나라 발행)가 일부 소위 엘리트 계층 사이에서 커다란 화제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읽어보면 신도(信徒)가 될 겁니다』는 것이 이씨의 자신만만한 말이다. 이씨는 책이 출간된 후 전·현직 장관, 국회의원, 학생운동단체 동우회원들이 자신을 찾아와 50여일간 「독회」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제3의 사회」는 3부 12권으로 예정된 장편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첫 권이 나온 후 지난달까지 1부 4권이 발간됐다. 핵심적 내용은 최신 국제금융시장의 실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의 과정과 그 본질에 대한 분석이다. 한국이 IMF위기를 맞은 후 그 원인을 놓고 제기된 이른바 「내인론」「외인론」「음모론」등에 관한 수많은 논란과 저작들 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씨의 책은 소설이라는 보다 대중적 양식을 취한데다,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내용으로 실감을 주어 비슷한 책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인포 픽션」(정보소설).
신문사 문화부기자 미옥이 어느날 「H」라는 인물로부터 전자메일을 받는다. 「신(神)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메일이다. 미옥은 처음에는 황당무계했지만 엄청난 깊이의 철학적·역사적 통찰을 갖추고 무엇보다 세계를 수학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는 H의 메일을 계속 받으면서 그의 정체와 신의 정체를 추적한다. H가 말하는 신은 바로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국제자본트러스트의 지배자. 소설 1부는 미옥이 H의 인도로 세계적 금융위기의 본질에 접근해가지만, 「회계천국」 이라는 이름의 자본트러스트에 의해 납치되고 H에 의해 다시 구출된다는 줄거리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이씨가 펼치는 자본투쟁의 메커니즘에 대한 풍부한 실례, 수수께끼처럼 드러나는 국제금융의 비밀들이 독자를 압도하며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나이지리아 스캔들」「베어링은행 사건」등의 수많은 사건들이 소개된다. 한완상 전부총리는 이씨가 『천재성이 엿보이는 사람』이라며 『IMF위기와 세계의 움직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글』이라고 일독을 권하기도 했다.
이씨가 이 소설을 구상한 것은 96년. 『행복해지려고』 성악을 전공으로 택했던 그는 대학4년을 미대 조소과 작업실에서 보내고 졸업했다. 연극 일을 하다 훌쩍 스페인으로 떠나 「미국 월가의 달러 지배에 반감을 가진 독일계 은행과 연결된 투자파트너」이자 「브로커」로 일했다. 94년말 아시아공략을 위해 IFM이라는 회사의 한국지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정책담당자, 기업인들을 만나보니 『세계의 움직임을 너무도 모르고 있는 우물안 개구리들이었다』. 그는 『「제3의 사회」는 세계를 공멸시킬 수도 있는 밀턴 프리드만 식의 자유시장 우위론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이긴 하되 새로운 경제학에 대한 입문서, 그리고 뉴튼적 세계관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세계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안내서』라는 것. 그는 앤터니 기든스, 조지 소로스에 대한 비판서와 수학적 관점으로 세계의 불확실성을 쉽게 풀어쓴 또 다른 소설 「달걀」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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