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현대성의 행성-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1999/02/02(화) 18:01
「삼교(미쓰바시)경무국장 각하여. 우리들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여 주십사고 연명으로 각하에게 청하옵나이다. 만일 서울에 두기가 곤란한 점이 있다면 마치 대판(오사카)에서 시내에는 안되지만 부외에 허하듯이 서울 근접한 한강 건너 저 영등포나 동대문 밖 청량리같은 곳에 두어 주십사고 청하나이다」
1937년 대중문예지 「삼천리」(1월호)에 실린 글이다. 레코드회사 문예부장과 다방마담, 여급과 기생등 당시 대중문화의 중심인물들이 서울의 치안담당자에게 댄스홀 운영을 허가해줄 것을 공개탄원 형식으로 요청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진송이 지은 「현대성의 형성-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현실문화연구)는 1930년대의 일상생활과 문화행태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출발점은 「그동안의 우리 근대사 연구는 식민지의 일방적 상실의 경험만을 강조하거나 정반대로 역사의식의 부재 속에서 얼굴없는 모더니티의 거죽만을 더듬어 오지 않았는가」하는 문제의식이다. 김씨는 억압과 뒤틀림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오늘날 현대성의 실체와 기원을 당시 모습을 통해 확인하려 했다. 그는 10년간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1930년대를 전후한 우리의 일상사, 대중문화사, 지성사, 도시문화사, 여성사를 꼼꼼이 되짚었다. 이같은 작업을 통해 이 시기가 오늘날의 현대의 조건을 놀랄 만큼 흡사하게 갖추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울에 딴스홀을…」을 부제로 붙인 이유는 이 글 속에 현대화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식민지조선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각하는 딴스를 한갓 유한계급의 오락이요 또한 사회를 부란시키는 세기말적 악취미라고 보십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교딴스조차 막는 것이라면 그것은 각하의 잘못 인식함이로소이다」라고 주장하는 이 글은 식민상황에서 현대를 추구했던 주체가 누구였는지, 또 현대의 방향과 뒤틀려진 역정은 어떠했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서두에 소개한 청원은 어떻게 됐을까. 일제시대 내내 댄스홀은 허가되지 않았다. 김철훈기자 ch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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