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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계화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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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계화의 덫

입력
1999.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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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계화의 덫

1999/02/01(월) 16:58

■ 한국일보가 매주 월요일자에 연재중인 「실록 청와대」의 44회(98.7.25)는 「문민정부의 세계화」에 대한 비화를 소개하고 있다. 「뭘 말하면 좋겠노…기내서 세계화 급조」. 제목부터가 다분히 부정적이다.

사연은 이렇다. 94년 11월16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어 호주 방문길에 오른 김영삼대통령은 기내에서 보좌진에게 『내일 아침, 기자들과 간담회가 있제. 뭘 말하면 좋겠노』라고 물었다. 「세계화」는 이 날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 달 후 「세계화 내각」이 출범하고 「세계화 추진위원회」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세계화는 마치 시대적 소명인 양 요란벅적하게 출발했다.

■ 지금 스위스의 작은 휴양도시 다보스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토론이 뜨겁다.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올해 주제는 「책임있는 세계화_세계화 충격의 관리」. 정치·경제·학계의 세계 지도자 1,8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회의는 세계화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올바른 세계화의 길을 모색하는 최초의 국제회의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주제어 중의 세계화(또는 세계성)가 「글로벌리티(globality)」로 표기된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 현상이라면 「글로벌리티」는 실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제 세계화는 진행형이 아니라 현재완료형인 것이다.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잘 나갔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퇴장한 지구촌에서 세계화는 새로운 경제질서로 자리잡았다. 자본과 상품의 국경없는 자유로운 이동, 기업활동의 국제화, 생산기반의 지식화는 모든 나라에게 혜택을 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세계화가 반드시 「축복」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아시아 경제위기의 근원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서방자본의, 특히 투기성 단기자본의 무차별적 이동과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맹신이 아시아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도 강도높게 제기됐다. 또한 세계화란 결국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다보스 포럼의 창설자인 클라우스 슈밥이 개회 연설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즉 세계화의 윤리성을 역설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 일찍이 세계화를_그 이전에 국제화도 있었지만_ 논했던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게 아니다. 굳이 한글을 발음 나는대로 알파벳으로 표기할 것을 고집한 「se gye hwa」는 한국적 개혁만을 강조한 개념이었지, 진정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한 세계화는 선진국의 환상에 젖은 떠벌리기 식의 외화내빈이었다. 김영삼정권이 세계화를 주창한 지 거의 정확히 2년 후(96.11.25)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금융·자본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그 여파를 견디지 못해 또 정확히 1년 후(97.11.21) 국제통화기금(IMF)에 갔다. OECD 가입 1년만에 IMF 구제금융을 받은 멕시코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이다. 정치적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자율적 「se gye hwa」는 결국 그 이상한 작명처럼 코미디처럼 끝났다.

■ 이제 뒤늦게 세계화에의 적응을 타율적으로 강요받는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변혁의 기로에 서 있다. 밖으로는 세계화의 열매를 포식한 미국의 「야수 자본주의」가 언제 배탈이 날지 모른다. 중국도 언제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는 폭탄을 터뜨릴지 모른다. 모든 게 불확실한 세계화의 끝은 어떻게 다시 우리에게 비수를 겨눌지 모른다. 문제는 사실 지금부터다. 「다보스 포럼」은 우리에게 「세계화의 덫」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기봉 국제부장 kibong@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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