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이다. 대학입시제도 변경처럼 큰돈 들이지 않고서도 개혁의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땜질식 개편에 그쳐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최근 우리정부의 조직개편은 규모와 내용면에서 모두 미흡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우리가 흔히 90년대 행정개혁의 모델로 거론하는 뉴질랜드나 영국 미국 심지어는 중국까지도 공무원수를 거의 반으로 줄이는 대규모 조직통폐합을 실현하였으며 일본도 현재 12성9청을 10성2청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 비해 김영삼 정부는 5년간 2원16부6처의 중앙행정기관을 2원14부5처로 줄이는데 그쳤고 일반직 공무원의 감축인원은 총 1,345명에 지나지 않았다.
작년초 김대중정부의 중앙행정기구 개편에서는 재정경제원과 통일원이 각각 부(部)로 개편되고 총무처와 내무부가 행정자치부로 통합되었으며 공보처와 정무장관실이 폐지되어 외형상 2개 부처가 줄었다. 그러나 장관급의 기획예산위원회와 여성특별위원회, 차관급의 예산청과 식품의약품청이 신설돼 중앙행정기관수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일반직 공무원은 16만여명중에서 작년초에 7,600여명을 줄였고 2000년까지 1만여명을 더 감축하는데 그칠 예정이다.
이처럼 조직과 인력의 감축규모가 미미할 뿐아니라 행정기능의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하기도 어렵다.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행정개혁 실적을 보면 중앙부처는 기획기능만 맡고 집행기능은 일선행정기관이나 독립행정법인으로 이관하거나 민영화하는 방향으로 획기적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상공자원부 문화체육부 재정경제원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등 두개 부처를 단순 통합하는데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관련 기능과 업무를 통합하고 기획관리실 감사관 총무과등 공통부서를 하나로 줄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러한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중앙정부 조직개편은 국가전체의 행정기능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할 것인가를 고려한 큰 틀 속에서 각 부처가 효율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기존 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적 로비에 밀려 기존 부처조직을 분리 내지 통합시키는데 그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따라서 기구개편에 앞서 정부기능 전반에 걸친 검토와 조정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수행해야 할 기능의 범위와 역할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여 민간에 넘길 부분은 과감하게 이양해야 하며 그에 따라 담당부서들은 당연히 통폐합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에 1,200여건의 규제를 폐지하고 과거 7년동안 900여건의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중앙부처의 해당업무 담당조직들은 별로 축소되지 않았다. 업무를 이양하면서 정부출연 내지 출자로 설립된 준정부기관들만 신증설되고 중앙부처의 해당부서는 지도감독업무를 수행한다는 구실로 존속하여 오히려 전체 인원은 늘어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향후 조직개편에서는 공공부문 전체의 기능조정 및 인력배분에 관한 기본원칙과 종합적인 계획수립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에 따라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산하기관, 공기업, 공단등 준행정기관 전반에 걸친 조직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전체 및 부문별 기능조정에 따른 조직개편은 전문적인 분석과 합리적인 판단을 토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작년의 경우처럼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무위원회의 안이 국회심의과정에서 왜곡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부서의 신설여부와 위치 결정에 있어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이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어떤 정당에 유리할 것인가 하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타협안을 채택하는등 의 사례가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 부처별로 포괄예산을 배정한다고 하면서 기획예산위와 별도로 예산청을 두기로 한 국회의 결정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만큼 조속히 바로 잡아야 할 것이며 인사위원회 설치 문제도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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