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터뷰] "문학위축은 문인 직업의식 약화탓"
1999/01/29(금) 17:32
- 소설가로 제2인생 김준성 전부총리 -
전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김준성(金埈成)씨. 그는 공직 은퇴후 전문경영인으로, 소설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씨는 97년에 창간한 반(半)연간문예지 「21세기문학」을 2월부터 계간지로 바꾼다. 『나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라며 한층 더 의욕적으로 문학의 꿈을 펼치고 있는 김씨를 만나보았다.
-문학출판시장이 가뜩이나 어렵다고들 하는데 「21세기문학」을 계간지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예지를 창간하면서 세운 두 가지 목표는 진정 문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보자, 문단계파·이념을 초월해 그야말로 「이상적인 문학지」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알맹이있는 잡지를 내려면 제대로 된 필자를 구해야 한다, 그러자면 6개월에 한 번 내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일단 성공한 셈이라고 자평합니다. 하지만 책을 기다리다 잊어버릴 정도가 되니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문인들은 작품 게재기회를 더 달라고 주문하더군요. 그래서 계간으로 발행횟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중진문인들도 글을 쓰게 하고, 노벨문학상까지 내다보며 작가들을 발굴할 것입니다. 계간지가 되면 작품을 지금처럼 선별해서 실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문학이 「변방의 문화」로 전락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요즘의 한국문학과 문인들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문학이 너무 상업화했습니다. 대중문학과 순문학의 차이가 없습니다. 베스트셀러 대중소설 10편보다 제대로 된 단편 하나가 나와야 합니다. 문화의 모체는 문학입니다. 그런 문학의 역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학외적인 것이 팽배하고, 굳이 문학을 돈을 주고 사려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문학이 위축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당연합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문인들의 직업의식 프로의식이 약해진 결과라고 봅니다. 문학도 직업인데 실제 전업작가라 할 사람은 우리나라에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경제적 배양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학을 하겠다면 좋은 작품을 남기겠다는 의식이 주(主)요, 경제적 여유는 종(從)이 돼야 합니다』
-정부의 문화정책, 우리문화 전반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정치가 혼란하고 경제가 곤란하면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럴수록 정부가 국민에게 용기를 주고 「지적 만족」과 「안정감」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실질적 자극이 되는 정책이 아쉽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기업의 역할입니다. 현대예술의 진흥은 기업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우리도 과거처럼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운운하며 눈가림 차원의 기업문화를 하지 말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아무런 요구 없이 기업이 문학·문화진흥에 나서야 합니다』
-올해 팔순이신데요. 근황은 어떠십니까.
『요즘이야 팔순이라 해서 특별히 기념할 것은 아니지요. 이청준 김주영 한승원 서영은씨등 잘 아는 작가들과 공동작품집을 냈으면 합니다. 최근 유럽 사회주의의 변화에 관한 책을 7~8권 읽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지구의 멸망과 직결될 자본주의의 변화는 한국에도 시사점이 많습니다』
-새 소설을 구상하고 계십니까.
『요즘도 매일 저녁 원고지 5~10장씩을 씁니다. 내 목표가 2년에 책 한 권 내는 것입니다. 주제는 언제나 「돈과 인간과의 관계」입니다. 신문에 나는 사건에서 소재를 많이 찾습니다. 얼마 전 대기업이사의 부인이 필로폰에 중독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 착안해 IMF로 실직한 대기업간부와 마약밀매조직의 마수에 걸려드는 그 부인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종기변호사사건」도 소설로 쓰려고 자료를 수집 중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아무리 교육받아도 원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추악한 일면, 수성(獸性)을 카프카적으로 다뤄볼 생각입니다』
-공직을 떠난지 16년이 됐습니다. 우리 경제, 정치에 대해 하실 말씀은.
『할 말은 많지만 입을 다물겠습니다(웃음). 다만 한 가지, 영어공부 겸 해서 1주일에 한 번 미국인교수와 두어시간 대화를 나누는데 그 사람이 한국인은 왜 배타적이냐고 묻더군요. 나는 2,000여년간 700번 가까이 외침을 받은 우리 민족사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역사를 볼 때 우리 민족은 진짜 독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산주의를 해도 독하게 하고, 자본주의를 해도 독하게 하지요. 그 잡초같은 생명력이 우리 민족을 잘 이끌어갈 것이라고 낙관하겠습니다』
하종오기자 joha@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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