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들은 발을 구르는데
1999/01/29(금) 17:20
22일 발효된 새 한·일어업협정 실무협상 결렬로 현해탄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주무장관인 김선길해양수산부장관은 바로 그날 저녁 해외출장에 나섰다.
남극조약체결 40주년 기념회의 참석이 목적이라지만, 과연 이러한 때 주무장관이 해외출장에 나서야만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조약당사국 20개국 대표가 참석한다는 이번 회의에는 차관등이 참석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일어업협정 실무협상이 결렬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의 일 처리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새 협정의 세부사항을 결정하기 위한 양국의 실무협상의 결렬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나가 조업중이던 300여척의 한국어선에 대한 철수 명령을 뒤늦게 내림에 따라 어선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어선들은 일본 순시선에 나포됐고, 다른 많은 어선들은 목숨같은 어구를 버려둔채 어장을 떠나야만 했다.
조금 일찍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같은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해양수산부의 늑장대응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이것도 부족해 어민들과 아픔을 같이 해야 할 주무장관이 이를 뒤로 하고 시급할 것 없는 회의 참석을 위해 남극출장에 나선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다.
수많은 자원이 묻혀있는 남극대륙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어민들의 좌절과 아픔을 달래기 위한 문제해결이 지금 시점에선 무엇보다 시급하다.
어민들은 어장을 잃은 것도 가슴 아프지만 팽개치고 온 어구 때문에 발을 구르고 있다. 김선길장관은 귀국길인 30일 일본에 들러 일본측과 협상을 벌일 예정이라고 하지만 어민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주무부처의 장관부터 어민들의 아픔을 멀리한 상황에서 일본의 양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잃은 어장을 되찾는 것은 물론 나포된 어선의 석방과 버리고 온 어구 회수가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지 어민들의 수심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지금 해양수산부에 필요한 것은 어민들과 이같은 아픔을 같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자세다.
문제해결이 늦어질수록 어장을 잃은 어민들의 피해는 늘어난다. 어구 회수도 마찬가지다. 현재로는 어느 것도 뚜렷한 전망이 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양수산부의 책임은 막중하다.
어선이 나포되고, 어민들이 어구를 버린채 허둥지둥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도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김선길장관부터 통감, 일본측의 이해를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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