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 "기아처리 정치압력에 늑장"
1999/01/29(금) 18:24
29일 계속된 국회 IMF환란조사특위의 청문회는 97년 기아사태가 3개월이나 걸려 늑장 처리된 것이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주원인이 됐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했다. 의원들은 이신행(李信行)전㈜기산사장과 김인호(金仁浩)전청와대경제수석, 유시열(柳時烈)전제일은행장 등을 상대로 기아사태의 처리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적 고려 때문에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던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특히 의원들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차남 현철(賢哲)씨가 기아사태에 개입하는 바람에 신속한 처리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자민련 어준선(魚浚善)의원은 『기아에 부도유예협약을 적용한 것은 강경식(姜慶植)전경제부총리가 증언한 대로 김전대통령이 「부도를 내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부도유예협약의 적용 자체가 불법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기아의 신청이 없었는데도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일방적으로 부도유예협약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국민회의 천정배(千正培)의원은 기아에 대한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은 『채권은행장 회의가 열리기도 전인 97년7월8일 김인호전경제수석이 주재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결정됐다』고 폭로, 『기아사태 처리 지연은 청와대로부터의 정치적 압력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회의 장성원(張誠源)의원은 현철씨가 97년초 당시 기아 이기호(李起鎬)종합조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말한 녹취록을 공개한 뒤 현철씨의 기아사태 개입 개연성을 추궁했다.
강전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당시 경제팀의 책임론도 다시 제기됐다. 무엇보다 강전부총리가 채권은행대표자회의가 열리기 직전 항상 기아관련 대책회의를 주재한 뒤 유전제일은행장을 통해 대표자회의에 지침을 내려보내는 등 절대적 영향력을 했다는 점도 주요 추궁대상이었다. 또 강전부총리가 기아 김선홍(金善弘)전회장의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에 집착한 것은 특정기업의 기아인수를 전제로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답변에 나선 김전수석등은 『당시 노조의 반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 등이 기아사태 처리지연의 주 요인이었다』면서 기아사태에 대한 정치권 연계설을 부인했다. /고태성기자 tsko@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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