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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세기

입력
1999.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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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세기

1999/01/29(금) 18:00

2000년을 맞으면서 지난 1천년의 역사에 대한 성적표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밀레니엄이 어떤 성과의 역사였는지를 평가한다는 것은 새 밀레니엄의 푯대를 세우는 것이기도 하여 관심을 끈다.

그 중에서도 이미 우리나라 신문에서도 소개된 「1000년, 1000인」이란 책이 흥미롭다. 미국의 몇몇 언론인들이 자체 연구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종합하여 지난 1천년간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1천명을 선정한 것이다.

이 선정에 의하면 지난 1천년이 첫 손꼽는 위대한 인물은 금속활자와 활판인쇄술을 발명한 독일의 구텐베르크다. 그 다음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종교개혁을 한 루터, 지동설의 갈리레이, 문호 셰익스피어의 순이다. 또 그 뒤로는 만유인력법칙의 뉴턴, 진화론의 다윈,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화가 다빈치, 음악가 베토벤으로 이어진다.

이 집계를 놓고보면 10위이내의 인물들은 발명가나 탐험가, 학자, 예술가 등이 모두이고 정치가는 끼여있지 않다. 정치지도자나 군왕으로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가 12위이고 영웅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나폴레옹이 16위,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20위, 세계역사상 최대의 정복자라는 칭기즈칸이 43위에 들어 있는 정도다.

흔히 역사는 정치사로 여겨져 온다. 그러나 지난 1천년의 세계사를 움직여 온 주역들은 정치가도 정복자도 아니고 창의적이고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인물들이었다. 세계사는 문명사였고 문화사였다. 이것은 새로운 천년맞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에서 BBC방송이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지난 1천년간의 가장 위대한 영국인」을 뽑은 것이 있다. 이 조사에서는 카라일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셰익스피어가 단연 첫째다. 둘쨋번으로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이 꼽힌 것은 20세기의 동시대를 살아온 당대 영국 국민의 감각일 것이다. 그 다음이 윌리엄 캑스턴이요 다윈이요 뉴턴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에게는 이름이 다소 생소한 캑스턴이 누구냐. 그는 15세기때 사람으로 영국 최초의 인쇄업자다. 많은 책을 직접 번역하고 출판하여 영국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독일의 쾰른에서 활판 인쇄술을 배워 런던에 인쇄소를 차린뒤 초서의 「캔터베리이야기」 등 복사본으로만 나돌던 당시 영문학 작품들을 거의 모두 출판해 보급시켰다. 영어로 인쇄된 최초의 책이라는 그의 번역서 「트로이역사이야기」의 서문에는 『책을 복사하느라고 얼마나 펜이 달았으며 얼마나 손과 눈이 혹사당했던가』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러고 보면 지난 1천년간의 가장 큰 사건이자 가장 빛나는 업적은 인쇄술의 발명인 것 같다.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그후 급속히 전 유럽에 퍼져 학문과 문학의 진작뿐 아니라 종교개혁이나 과학혁명을 촉진시켰다. 캑스턴의 인쇄소 도입이 아니었더라면 영국이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는 셰익스피어도 탄생하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사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문명과 문화는 마인츠의 한 인쇄소 없이는 이렇게 찬란하지 못했을 것이고 세계사의 걸음은 너무나 더뎠을 것이다.

마인츠에 가보면 구텐베르크박물관이 있다. 그 지하실에 그가 만든 목제의 수동인쇄기가 복원되어 지난 1천년 역사의 상징물처럼 놓여 있다. 2층에 전시된 42행성서는 그의 활판인쇄기가 최초로 인쇄한 것이다. 이 박물관이 개관된 것이 1900년, 20세기와 함께 문을 열었다.

영국 런던에는 웨스트민스터 지구에 있던 캑스턴의 인쇄소 자리에 기념판을 걸어놓았다.

인쇄술의 발달은 무엇보다도 지식의 발달을 가져왔다.

21세기는 지식의 세기라고들 한다. 새로운 시대는 지식사회의 시대다. 지적창조력이 곧 국력인 세기가 오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지적 역량이 국가의 역량이다. 탈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식이 바른 자본이요 자원이다. 일본에서는 새 세기의 바람직한 경제사회의 모델을 지식에 가치를 두는 지가사회(知價社會)로 정할 것이라고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연초에 학력과 관계없이 지식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지식인운동을 제창했다.

한국은 구텐베르크 이전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창안한 나라다. 인쇄술이 지난 1천년의 영광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영광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그 영광에 합당한 지적 창조력을 길러왔고 기르고 있는가. 2000년의 문 앞에서 맨 먼저 자문해야 할 물음이다. 인쇄술이 횃불을 든 지난 밀레니엄의 역사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길을 비추고 있다. /본사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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