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칼럼] "마구 치면 도망가라"
1999/01/27(수) 17:06
서화숙 문화과학부 차장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살다가 막히면 전화를 거는 고등학교 은사가 계시다. 좋을 때는 별로 연락을 안드리다가 고민만 생기면 전화를 드리니까 선생님도 아셔서 첫 마디가 『너 요즘 힘들구나』이다.
지금은 서울 시립대 영문과교수로 재직중인 황호순선생님은 바쁜 중에도 실직으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어린이들을 대신 키워주는 수양부모 역할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유머와 통찰력으로 여고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끔은 학생들도 생각 못할 엉뚱한 이야기도 스스럼 없이 꺼내시곤 하셨다.
그 중 하나가 교사체벌에 관한 것이었다. 만우절날 온 학생들이 장난을 쳤다가 반장이 어느 교사에게 뺨을 맞은 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교사가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리거든 맞아라. 그러나 손이나 발이나 물건으로 아무 데나 후려치려고 하면 피해라. 아예 학교를 벗어나 집으로 도망가도 좋다』. 너무 엉뚱해서 학생들이 도리어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을 하셨다. 교사가 회초리로 때리는 것은 교육을 위해서이지만 손이나 발로 아무데나 후려치는 것은 이성을 잃고 화를 풀려는 것이다.
만일 그런 행위가 실제로 일어나버리면 맞은 학생은 맞아서 억울하고 교사 역시 나중에 돌이켜 생각하면 부끄러운 행동을 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그러니 그런 사실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주는 것이 현명하다. 도망갔다가 화가 풀렸을 때 사과를 하는게 낫다는 것이다.
물론 도망가면 더 길길이 뛸 교사도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체벌과 폭력에 관한 선생님의 분류법만은 지금도 정확하다고 믿고 있다.
교육부가 학교 체벌을 금지한다더니 학생이 교사를 경찰에 고발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몇달만에 뒤집었다.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교육상 어쩔 수 없을 때는 학교규정이 명시한 범위 안에서」 체벌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꿀 모양이다.
교사보다 덩지가 큰 학생들을 통솔하고 교육하는 것의 어려움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 경찰신고가 화제가 되었던 사례로는 선뜻 교사편을 들기가 힘들다. 발로 차거나 뺨과 머리를 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허용한다」가 아니라 무엇이 과연 교육적 체벌이냐에 대해서는 더 논의를 해야 한다. hssuh@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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