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 강경식 전경제부총리 증인신문 녹음
1999/01/26(화) 17:53
_97년 11월 이전에는 외환위기를 감지하기 어려웠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외환위기라 하면 IMF구제금융 받아야 할 정도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고, 외환사정이 어려운 것은 이미 3월부터 어려웠다는 말이다』
_위기인식이 7월초부터 가능하지 않았느냐. 각종 경제지표에서 나타난 위기예고를 무시한 것 아닌가.
『경제위기 얘기는 97년 3월 입각할 때부터 나왔다. 한보가 부도난 이후 매일 언론에 금융대란이 보도되는등 이미 위기상황에 있었다』
_97년 7월부터 외환위기 징후가 있었지만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 아니냐.
『10월말까지의 상황에서 11월의 외환위기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나만이 아니다. 경제가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은 알았지만 IMF로 가야하는 상황을 예측하기는 어려웠다』이 『몰라서 대책을 안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_부총리 인수인계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이런 상황이면 재경원 고위간부나 증인이 신임부총리에게 IMF지원 요청 건을 알려줘야 하지 않았나.
『19일 오전 대통령 보고 후 오후5시 기자회견, 저녁엔 미국 루빈재무장관 통화등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보고를 마치고 나온 직후 경질 통보를 받았다. 김용태 비서실장한테 후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해, 후임자가 5시 기자회견을 갖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취소시켰다. 저녁에 약속대로 루빈 장관에게 전화, 「후임이 누구인지 모르나 IMF로 간다는 발표를 할 것이니까 잘 협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_11월19일 IMF행을 발표한다는 것을 18일 일본 미쓰즈카대장상에게 전화로 알려줬다. 국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반드시 발표해야 하지 않았나.
『16일 캉드쉬총재와 만나 얘기한 것이 IMF와 협의가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이미 IMF로 간 것이다. 19일은 협의시작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날이었다. 캉드쉬총재와 IMF행이 얘기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_당시 임창열 신임부총리가 가장 중요한 현안인 IMF행 발표를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여러 상황으로 볼 때 (임부총리가) IMF 협의 과정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발표를 언제 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정부가 일임받았다. 19일 발표를 안해도 됐다. 그날 발표가 IMF의 도움 없이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번복한 것으로 받아들인데 문제가 있었다』
_97년 9월에도 금융대란설이 있었는데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냐.
『금융대란설은 3월에도 있었고, 5월에도 있었고, 내내 있었다.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라 그런 정도라면 그냥 끌고 갈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11월에 외환위기가 도래할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냥 넘어갔겠느냐』
_10월27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펀더멘털이 튼튼하니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당시 국제시장에서 돈을 빌리기가 무척 어려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돈을 빌릴 수 있겠느냐고 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책임있는 사람이 우리경제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날로 거덜이 난다』
_11월9일 열린 대책회의에서 이경식 전한은총재와 윤진식 전청와대조세금융비서관은 IMF로 가야한다고 주장했으나, 증인은 「내 재임중에는 창피해서 IMF로 갈 수 없다고 얘기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설사 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런식으로 표현하겠느냐. 그것은 나에 대한 인격모독이다』
_11월14일 오전 김전대통령에게 IMF행을 보고하면서 정치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고 얘기했다는데 그 뜻이 뭐냐. 문민정부가 구제금융으로 끝나게 됨으로써 자존심이 상했다는 얘기냐.
『그렇다. 우리 국민 전체의 자존심이 상하게 된 것 아니냐』
_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은 실패인가, 성공인가.
『성공했다면 IMF로 갔겠는가』
_경제정책 실패에는 당시 집권여당을 비롯해 정당도 책임이 있다고 보는가.
『그렇지만 야당도 포함되는데…』
_부총리 취임하패스고 외환 관련 보고를 받을 때 80억달러는 급할 때 사용할 수 없는 해외 점포 예치금이었다는 사실을 파악 못했나.
『그 운영까지 부총리가 챙기지는 않는다』
_외환보유고 관리는 어떻게 하나.
『재경과 한은 실무자들이 상의해서 운용한다』
_그럼 한은에 책임이 있는가, 재경원에 책임이 있는가
『그렇게 얘기하면 한국은행이 책임지고 운용한다』
_97년 1/4분기에 건국 이래 처음으로 환율안정을 위해 선물환시장에 개입했다. 그것만으로 대외 신인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 그만큼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 아닌가.
『취임 전부터 있던 일이다』
_취임 후 긴축은 잘 했는데 환율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환율은 실세를 반영하는 쪽으로 해왔다』
_그럼 무역수지가 개선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3/4분기에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줄었다』
_IMF협상은 2~3개월씩 걸리는데 IMF그림자가 임박한 10월에 지방 순회 강연에 나섰다. 안이한 대처 아닌가.
『당시에는 IMF평가단이 와서 협의했듯이 그렇게 위급상황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또 IMF협상도 패스트트랙(Fast Track)이란 것을 도입, 빨리 처리하는 길이 있었다. 지난 4월 캉드쉬총재와 만났을 때도 그가 「멕시코에도 하루 160억달러를 동원한 적이 있다. 한국도 필요하면 해 줄테니 금융개혁을 잘 해보라」고 했다』
/김병찬기자 bckim@hankookilbo.co.kr 김성호기자 sh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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