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개미세계도 노예.간첩 있어요"
1999/01/26(화) 16:56
「아들 넷을 낳으신 여왕이시지만 빗자루 하나 제대로 들지 않은 수개미들만 데리고 평생 일개미처럼 일만 하신 어머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본격적인 개미연구서 「개미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의 지은이 최재천 (崔在天·45)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 그가 책을 내면서 어머니에게 바친 헌사(獻辭)이다. 개미야말로 인간과 가장 흡사한 생물이라고 믿는 그는 개미들의 「신기하고 황홀한」 세계를 알려주고 있다.
『개미는 도시와 왕국을 건설하고 농사를 지으며 노예와 가축도 부립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때로는 대량학살도 자행되는 개미세계에는 강도 간첩 암살자 도둑 등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 인간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책에는 개미들의 그런 모습이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소개되고 있다. 5,000만년 전부터 크고 작은 「버섯농장」을 경영해 온 아프리카의 개미들,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다른 종(種)과 합종연횡하는 아즈텍 여왕개미, 깍지벌레를「사육」하는 레몬개미등 다양한 개미들의 삶을 통해 개미사회의 경제·문화·정치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개미연구서라기보다 과학수상집이라고 이름붙인다.『이제 겨우 창호지에 침발라 뚫은 구멍으로 들여다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궁극적으로는 개미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해해 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한다.
77년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에서 생태학 석사, 90년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물행동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국제적으로 더 잘 알려진 동물행동학자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의 왕국」을 제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가 개미를 만난 것은 하버드대 대학원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세계적 개미학자인 베어르트 횔도블러와 에드워드 윌슨 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셨다.
개미 연구에 쌍벽을 이루는 교수들 밑에서 공부하며 개미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 84년 코스타리카에 본부를 둔 열대학연구소에서 경험한 「환상적」 개미체험도 중요한 계기였다. 결국 그는 학위는 민벌레 연구로 땄지만 개미를 평생연구 대상으로 삼아 연구·관찰을 계속해 왔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대 전임강사와 인근 터프스대 초빙교수로 활동하던 그가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것은 94년. 『TV에서는 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유행이었고 개미세미나를 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읽은 사람들의 질문이 빗발쳤다』고 회상한다.
미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소설 「개미」를 읽어 본 그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과학의 대중화에 도움이 되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2월13일 도쿄(東京)대에서 「개미사회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강연할 예정인 그는 최근 자연사랑 모임을 만들었다.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이름붙인 모임에는 벌써 40여명이 가입했다. 『동물행동학만큼 사람들이 과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알면 사랑합니다』. 개미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는 그의 믿음이다.
/김철훈기자 ch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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