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최승자.이문제 6년만에 나란히 새 시집
1999/01/26(화) 17:21
80년대 이후 우리 시에서 각자 뚜렷한 개성의 세계를 확보한 최승자(47), 이문재(40) 시인이 나란히 6년만에 새 시집을 냈다. 최씨의 「연인들」(문학동네 발행)은 등단 20년만에 그가 낸 다섯번째 시집이고, 이씨의 「마음의 오지」(〃 〃)는 그의 세번째 시집. 시를 이끌어가는 어조도 다르고, 시로 추구하는 그들의 지향점도 다를지 모르지만 그들의 출발점은 어느면 닮은 점이 있어보인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반역의 의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계는 영원한 고쳐 쓰기의 과정, 구제불능의 패러디이다」(「눈이란 무엇인가」)라고 말하는 최씨의 언어는 과격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다시 한번 물어주시겠어요/나더러 안녕하냐고//그러엄, 안녕하죠.//똑딱똑딱 일사불란하게/세계의 모든 시계들이 함께 가고 있잖아요?」(「안부」)라거나 「그래, 맞다, 맞다, 그건 비밀이다. 아주 훤한 비밀/태양처럼 빛나는 비밀, 창조 이래, 좌우지간 불행하다」(「좌우지간」)고 말할 때는 자조와 비아냥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씨도 시집 말미에 붙인 말처럼 『개인으로 설 수 없는 현실에서의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시작의 동력이 되고 있다. 「카스트 제도는 인도만의 것이 아니다/인류의 신분증이다/아침 지하철 속에서 뼈와 살이 으스러지도록/느끼고 느끼고 흐느낀다/신분과 혈통은 영원하다//찬물로 세수하면서 살자 살자 그래 살아내자고/거울 속을 들여다보면서 울컥하고 집을 나서는 아침」(「바라문, 바라문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라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에 대한 비아냥과 안타까움에서 멈춘다면야 시는 넋두리와 다를 바 없다. 최씨는 『5년여동안 동·서양의 상징체계들 - 음양오행술, 서양 점성술,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 타로 카드 등을 거치면서 얻은 생각들을 내 생각들로 바꾸었다』며 새로운 출발의 비밀을 말했다(그는 최근 「상징의 비밀」이라는 묵직한 서적을 번역하기도 했다). 거기서 최씨가 얻은 것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것 없이 이 지상 사람들 모두를 천상적 존재의 껴입은 땅님, 즉 따님인 것」으로 보는 존재에 대한 넓은 인식이다. 그 인식이 시집 제목인 「연인들」 연작을 낳았다. 이 「새로운 페미닌적 요소」로 최씨는 「갇혀있던 다른 한 마리의 새처럼/지하 무덤,/이제는 뻥 뚫려버린/시간을 뚫고 무한을 향해/우주 중심까지 수직 상승할 때」라고 말한다.
이씨는 그와 달리 「농업」이라는 은유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서울 서대문 거리에 있는 「농업박물관」건물이 그 모티프였다. 「농업박물관이라- 불과 30년 사이에 농업은 박물관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우리 아버지가 박물관에 들어간 꼴이지요/…/나의 태어나지 않은 손자는 먼 훗날 이 할애비를 회사박물관에 가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지요」(「농업박물관 소식 - 목화 피다」). 이씨는 『도시, 자본주의, 근대의 사생아인 내 시와 삶이 마침내 가 닿아야 할 고향은 흙에 바탕한 그 무엇, 농업에 가까운 그 무엇』이라고 말했다. 거기 도달하기까지 그는 「불안하지 않으면 편치 않은 이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하고,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을 나서 「길 너머」를 추구하며 「마음 밖으로 나간 마음들」을 찾을 것이다. 하종오기자 joha@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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