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증인 참고인 신문 지상중계
1999/01/25(월) 23:28
◇이경식 전 한국은행총재
_97년 11월10일 오후9시30분께 김영삼 전대통령으로부터 외환위기와 관련된 전화를 받은 사실이 있나.
『전화를 받고 당황했다. 김전대통령은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어 긴급한 것은 외환사정이라고 말했다. 잘못하다간 국가 부도위기 사태가 올 수 있으므로 긴급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_한은총재로 있으면서 언제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고 느꼈는가.
『97년 한보사태후인 2월께 위기를 느꼈고, 기아사태 이후인 8월이후에는 좀 더 심각하다고 느꼈다. 10월20일께는 「홍콩이 못 버티면 우리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구제금융으로 가야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11월3일께였다』
_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왜 제때 보고하지 않았나.
『보좌를 잘못한 것은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관례에 따라 한은총재는 직보(直報)라인에 있지않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경제정책에 대한) 내각의 결정권자인 재경원이 대통령에게 당연히 보고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_임창열 경제부총리가 97년 11월 19일 취임했을 때 외환보유고 현황 등에 대해 브리핑을 했는가.
『별도의 보고를 하지는 않았다』
_11월19일 임 부총리가 느닷없이 IMF행을 부인하는 바람에 국제적인 약속을 파기한 결과가 됐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못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은) IMF에 온다고 해놓고 장관이 바뀌니까 오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_당시 한은총재로서 외환관리를 잘못한데 대한 책임이 막중하다.
『결과적으로 사태수습을 못한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은은 외환관리법에 의거해 재경원 위임사항, 그것도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만 관리를 한다』
◇임창열 전경제부총리
_김광일 전비서실장은 『97년 11월19일 김전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기자회견할 때 IMF행을 발표하라고 지시했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발표하라는 지시나 재가는 없었다. 김광일전실장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_김전대통령의 감사원·검찰 제출 답변에는 11월17일 부총리 임명을 통보하며 IMF와의 협의내용을 전해준 것으로 돼 있다.
『들은 바 없다. IMF와 협의중이라는 얘기만 김인호 경제수석에게서 들었다』
_11월18일 김전대통령과 강경식부총리 김용태비서실장 김인호수석 등 4명이 외환대책을 숙의하고 밤 미국과 일본측에 IMF행 발표계획을 통보했다는데.
『인계받은 바 없다』
_부총리 취임 기자회견을 하면서 IMF행을 부인했는데.
『단호하게 잘라 말한게 아니라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필요하다면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를 먼저 했다. 그러나 뒷부분에서 외채 만기연장이 되고 외자유치가 이뤄지면 IMF안가고도 외환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한 것이다』
_부총리 취임후 관련 실국장으로부터 IMF행과 관련된 보고를 받지 않았나.
『그날 발표할 금융시장 종합안정대책 보도자료를 검토하고 외환환율변동폭을 당초 15%에서 10%로 고쳤을 뿐이다』
_IMF 근무 경험자로서 종합대책 내용만 보면 IMF행을 알 수 있지 않았나.
『협의가 진행중이라는 건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IMF행이 경제주권 등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내가 잘 안다. 당장 결정할 사항이 아니었다. 또 캉드쉬총재 요구중에 당시 대선후보를 뜻하는 대선당선자의 지지 의사 확인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 뒤 21일 IMF행을 발표한 것이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_97년 11월10일 김전대통령에게 전화로 환란위기를 보고한 일이 있나.
『윤진식 비서관이 11월9일 찾아와서 한은과 재경원 보고서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냐」고 묻길래, IMF로 가는 것이 제일 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윤전비서관을 보낸 뒤에, 김전대통령에게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전화를 신청했다』
_재무장관과 재경원장관시절, OECD가입을 역설한 적이 있나.
『가입해야 우리 경제의 국제화 세계화에 도움될 것이고, 쌍무적 협상보다 다국간 협상에 들어가서 우리 목소리를 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OECD가입이 환란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는 생각안한다』
_단자사에서 종금사로 전환한 업체중 퇴출된 경우가 많다. 이들이 무절제하게 자금을 운영한데다 관리감독도 소홀했던 것이 환란의 원인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종금사 전환은 국제적인 겸업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나중에 퇴출된 경우도 있으나, 97년 기아사태로 인해서 자금환수가 안되는등 여러 대기업에게 물려서 어려워져 그렇게 연결됐다고 생각한다』
_강경식 전경제부총리등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 아닌가.
『각자의 경험과 시각이 있으니까…』
◇윤진식 전청와대조세금융비서관
_97년 11월9일 대책회의에서 강경식 전부총리가 『재임중 IMF에 안간다』고 발언한 사실 있나.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안나나, 「그것은 곤란하다」는 투의 말이었다. 전체적으로 IMF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_당시 금융개혁법이 통과됐으면 우리경제가 좋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대외신인도 회복은 가능했겠으나 당시 상황을 바꾸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_OECD가입이 외환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OECD가입 당시 우리 수준으로서는 조금 빨랐다고 생각한다. 또 가입과 관련된 준비도 소홀하고 미흡했다』
_환란을 초래한 세가지 요인은.
『경상수지 적자의 누적을 방치한 것과, 외환보유고 관리를 잘못했고, 외채관리에 문제 있었다고 생각한다』
_97년 11월12일 김전대통령 면담시 후임부총리에 관해 물은 적 있나.
『참고로 하겠으니 이야기 해보라고 해서 홍재형 전경제부총리를 추천했다. 그러나 김전대통령이 「그 사람은 국민신당에 가 있어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당시 임창열 통상산업장관은 어떻느냐고 해서 좋겠다고 했다』
/김병찬기자 bckim@hankookilbo.co.kr 권혁범기자 hbkwon@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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