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기념
1999/01/22(금) 18:34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2000년은 한 해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마지막 해도 첫 달이 지나가는데, 새 밀레니엄을 맞기 위해 지금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나라들은 2000년을 빼앗기기라도 할듯이 미리 미리 쟁탈전인데, 우리는 남의 일처럼 노닥거리고 있는 까닭을 모르겠다. 새 밀레니엄 맞이가 무슨 법석 떨 일이냐고 한다면, 해마다 달력은 무엇 때문에 넘기는 것인지, 천년 만의 달력장 넘기는 커다란 소리가 왜 무의미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문화관광부는 문화비전2000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건의에 따라 2000년기념 4대사업이라는 것을 마련하기는 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참여하는 세계평화의 메시지를 2000년 1월1일 발표한다는 것이고, 21세기기념조형물을 건립한다는 것이고, 2000년중에 각국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세계청소년 평화의 노래 경연과 세계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는 기념예술축제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새 세기, 새 밀레니엄의 기념사업은 세기적인 것이라야 하고 밀레니엄적인 것이라야 한다. 세계 청소년축전이나 예술축제는 이것만 가지고는 밀레니엄적일 것도 세기적일 것도 없다. 세계 평화의 메시지는 벌써 참가자들을 서울에 모으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세계만 들먹였지 전 국민적인 이벤트가 되지 못한다.
일과성 행사가 아닌 것으로 남기겠다는 것이 기념조형물 건립이다. 그런데 이 조형물을 올해 안에 완공해 2000년 1월1일에 제막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날 착공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슨 조형물을 세우기로 확정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세울 것인지 그때까지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다. 한심하다.
1999년 12월31일 밤의 대제야(大除夜)에 우리 국민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새 밀레니엄을 맞는 대 전야제의 프로그램 하나도 나와 있는 것이 없다.
문화비전2000추진위원회가 발족한 것이 작년 5월이었고 정부가 기념사업을 결정한 것이 작년 말께였다. 새 천년을 기념하는 데 고작 한 해로 족하다는 짧은 생각이 또한 한심하다. 이것은 국가적 창의력의 빈곤이요 국가적 계획성의 부재다. 우리는 광복 50주년 때에도 정부수립 50주년 때에도 기념물을 남긴 것이 없고 전국민적인 축제를 연 것도 없다.
외국의 2000년 기념사업을 보면, 기념물만 하더라도 영국에서는 세계의 기준시인 그리니치 천문대에 지름 360㎙ 높이 53㎙의 밀레니엄돔을 건설하고,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센강변에 200㎙높이의 지구탑을 세우고, 독일에서는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부근에 기둥 4,000개의 나치학살희생자 메모리얼을 건립한다. 축제의 경우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의 500만평 부지에서 수백만명이 참가하는 대형 이벤트가 열린다. 구상의 규모가 다르다. 가령 또 프랑스의 「푸른 자오선」은 어떤가. 국토의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1,000㎞를 일직선으로 1만그루의 나무를 심어 연결한다는 것이다. 발상의 품계가 다르다.
전 세계 각국은 2000년이라는 테마를 놓고 진작부터 저마다 머리를 싸매왔다. 국가적 두뇌의 경연(競演)이요 국가적 역량의 경시(競試)다. 역사상 일찍이 세계가 같은 한가지 주제를 놓고 이렇게 경쟁을 해본 적이 없다. 세기의 대결이 아니라 수천년 만의 승부다. 지금 전 인류차원의 문화적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2000년 기념은 한낱 잔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각국은 저마다의 역사가 쌓아온 문화의 부피를 총동원하여 새로운 천년의 역사를 여는데 쏟고 있다. 새 밀레니엄 맞이는 지난 밀레니엄 문화의 총화와 결산을 과시하고 전시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가 없는가. 문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인식이 없는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그 경쟁은 2000년 1월1일 출발 신호가 울리는 것이 아니다. 벌써 시작되었다. 새 세기의 새해 첫 날을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출발점의 격차가 나버린다. 출발이 늦으면 한세기 내내 따라잡기에 힘이 든다. 1999년을 앞서야 2000년대의 선두에 나선다.
우리의 1999년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의 의기를 고취하여 새 세기를 향해 줄달음치게 할 만한 정부차원의 계획이 없다. 너무 한가하고 한산하다.
우리가 이렇게 지혜 없는 나라의 국민이던가. 창의 없는 교육의 결과가 이것인가. 코 앞에 와서도 천년을 내다 볼 줄 모르는 근시(近視)는 맹목(盲目)이다. 천년맞이 소계(小計)하나 꾸미지 못하고 어찌 나라의 천년대계를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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