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MTV `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
1999/01/22(금) 17:35
어찌「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MBC 월,화 오후 9시50분). 다음 주면 막을 내릴 정성희 극본, 장수봉 연출의 미니시리즈는 그 세월을 따라 한도 기쁨도 흘러간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살이라고 이야기한다.
「흐르는 것은…」은 가족드라마다. 박민식(박근형)의 가정을 들여다보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양만 가족이지 불륜과 탈선으로 치닫는 아침드라마, 사소한 일상과 에피소드로 이끌어가는 일일극과 다르다. 그렇다고 지난 시절을 매개로 아련한 추억이나 감상을 부추기는 복고도 아니다. 짧은 시간 아버지 어머니와 우리 자신들의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족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그들 나름대로 살아온 세월의 무게와 길이만큼 보여준다.
상처없는 영혼, 아픔없는 삶은 없다. 드라마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쳐놓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들춰낸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세월이 서러워 이혼을 결심하는 어머니(김윤경). 큰 딸(윤유선)은 1년 가까이 별거를 하면서도 남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둘째 딸(박채림)은 아버지같은 스승 준일(이영하)을 사랑하며 괴로워한다. 남편을 일찍 잃고 혼자 사는 고모. 그들이 암으로 죽음을 앞둔 가장인 박민식을 마주하고 이뤄내는 아쉬움과 아픔과 눈물이 생의 마지막 사랑을 가족에게 주고 가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욱 안타깝고 소중하게 만든다.
도시에서 오랜 세월을 버틴 그들의 낡은 한옥(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상허 이태준의 생가)처럼 사랑은 깊다. 내가 아닌 가족을 향해 있는 사랑. 그러면서 아닌 척하는 우리의 전통정서. 아내는 몰래 소리내 울지만, 남편의 편안한 여생을 위해 여전히 퉁명스럽게 행동하고, 큰딸은 남편과의 별거사실을 숨긴다. 사위는 자신을 아들처럼 생각하는 장인을 위해 이혼계획을 미루고, 준일은 제자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려 한다. 막내딸 정수(정슬기·11)의 눈에 잡히는 그런 풍경들에서 시청자들은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을 줄 아는 가족사랑을 되새긴다. TV의 공영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대현기자 leedh@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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