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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말을 아끼는 행정

입력
1999.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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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말을 아끼는 행정

1999/01/21(목) 17:54

국민의정부 출범 1년이 다가온다. 사상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한 새 정부는 IMF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고 있다. 애쓰고 노력한 결과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에 대한 신용평가가 다시 상향조정되고, 경제상황도 1년 전보다 호전돼가는 추세여서 다행스럽다.

모든 정부가 마찬가지지만 국민의정부는 어느 때보다 더 국민의 동의와 참여를 유도하는 동기부여와 정책입안이 절실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정부의 정치와 행정에서는 대국민설득과 홍보활동이 두드러져 보인다. 공보처가 없어져 국내외 홍보기능이 약해진 것같기도 하지만, 개별 부처의 홍보는 매우 적극적이며 더러는 공세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대중을 설득하는 대통령의 연설이나 말솜씨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대체로 이 정부의 인사들도 전정권의 인사들에 비해 이론무장이 잘 돼 있고 자신의 업무에 대해 일정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 장·차관들이나 청와대수석들이 조찬기도회같은 모임에 나가거나 각종 매체에 기고·출연을 하면서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사례가 어느 정권 때보다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정치·행정은 어느새 다변(多辯)의 정치, 다언(多言)의 행정이 돼가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우도 역대 어느 비서실장보다 말을 많이 하는 인상이다. 청와대 대변인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역사상 처음인 여야 정권교체의 의미를 살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면서 시장경제를 부추기고, 나라를 다시 세우는 제2건국을 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할 말이 많을 것은 당연하겠다.

하지만 다변에는 위험성과 부작용이 따른다. 재벌개혁이나 빅딜과 같은 일정한 사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의 고위인사들이 엇갈린 언급을 하거나 외국과의 협상이 걸린 사항에 대해 정부 부처끼리 상이한 입장을 밝히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의 대외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이는 사람까지 나서 자신이 국정 전반을 다루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논어에는 「不在其位 不謀其政(부재기위 불모기정)」_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뉴스의 생산과 홍보측면에서 정부는 프리미엄을 갖게 마련이다. 언론이라는 매체를 통한 발표와 언급이 일방적인 국민교도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늘 유의해야 한다.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면 진의가 왜곡됐다거나 언론이 잘못 보도한 것이라고 해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각제 개헌같은 것은 워낙 민감한 정치적 문제이므로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지 않은 문제에 대해 애드벌룬을 띄웠다가 거둬 들이는 사례를 보게 된다. 물론 언론에 일정한 책임이 있을 수 있다. 되도록이면 정책당국자의 말을 들으려 하거나 그들의 글과 말로 무게를 더하려는 속성이 언론에는 분명히 있다. 창간·창사기념일에는 저마다 대통령인터뷰를 하려 하고 그 때마다 주요한 제목거리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론의 생리이다. 언론은 원래 그렇다. 언론은 말을 먹고 산다. 매일같이 기자들과 상대하는 정부인사들이 그런 사정을 모를리 없잖은가.

말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 그러나 나라를 꾸려가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힘있는 사람일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 새 정부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의 논리와 실력은 이제 충분히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말을 아끼면서 보다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행정을 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말을 하는 시간을 아껴 남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을 하는 시간에는 남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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