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책임 떠넘기기'
1999/01/21(목) 17:53
야당의 불참 속에 여당 단독으로 시작된 경제청문회가 출발부터 환란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실망을 주고 있다. 청문회에 불려나온 재정경제부·한국은행·금융감독위원회등 정책기관들은 외환 위기에 이르게 된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책임소재를 얼버무리거나 다른 기관에 책임을 전가하는데 급급했다.
첫날 재경부에 대한 청문회에서 이규성장관은 환란 당시 경제정책을 한손에 쥐고 있던 구 재경원이 위기를 방치한 원인을 적극적으로 밝히기보다는 재경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이장관은 심지어 기아자동차의 부도유예 협약에 대해 『은행연합회가 주도했는지, 재경원이 주도했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환란을 규명하자는 것인지, 조직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금융과 외환정책의 양대 기구인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보인 책임 떠넘기기 공방도 보는 이의 낯을 뜨겁게 했다. 한국은행은 외환위기가 닥치기 휠씬 전인 97년3월에 이미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재경부에 제출했다고 밝혔으나 재경부는 이를 부인했다. 설사 보고서가 있다 하더라도 많은 현안 문제를 거론하면서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 한줄 언급하는 정도라면 면피용에 불과하다는 게 재경부의 반박이다.
이들 두 기관의 갈등이 외환위기에 미친 영향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두 기관은 외환위기가 불어닥치기 불과 몇달전까지 한은법 개정을 둘러싸고 심한 대립을 보였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위기상황을 맞아 긴밀하게 협조해도 부족할 판에 그들이 대립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외환위기의 원인과 무관할 수 없다. 이와관련, 강경식 전부총리가 금융개혁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의로 외환시장 개입을 포기했다는 의혹은 이번 청문회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로 앞으로 분명히 진위가 가려져야 한다.
청문회를 주도하는 의원들의 태도에도 실망스런 점이 적지 않다. 여당 단독으로 운영되는 탓인지 일부 의원들은 전 정권의 실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무능이 환란의 원인이 아니냐는 노골적인 질문도 나왔다. 이번 청문회는 가뜩이나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열린만큼 일방적인 구정권 때리기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원들은 환란의 본질을 밝혀내려는 보다 진지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야 하며, 증인들은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좀더 정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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