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고등학교 학맥
1999/01/19(화) 16:47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일본대장상이 총리였던 시절 관(官)계에서 도쿄(東京)대학 출신의 수를 대폭 줄이라고 내각에 지시한 일이 있다. 외무성, 대장성등 주요부처를 도쿄대학 출신이 점령해 관계 및 교육계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걱정처럼 관계 고위직 인사들의 약력을 보면 거의 도쿄대학 출신이다. 주요부처 일수록 이러한 현상이 심해 걱정하는 소리가 나올 만했다.
■도쿄대학 출신은 사회진출에 그만큼 유리하기 때문에 도쿄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3수·4수도 보통이다. 일단 입학하면 사회적인 대우가 달라진다. 도쿄대학생이란 신분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졸업을 늦추는 학생들까지 있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도쿄대 총장이 졸업식 축사에서 『제발 졸업 좀 해달라』고 하소연을 했겠는가. 이같은 상황이니 관계에서 도쿄대학 인맥이 형성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기다렸다는 듯이 TK니 PK니 MK니 하며 지역을 들먹거리고, 이것도 부족한듯 그 지역의 대표적인 고등학교 이름까지 곁들여 지역차별을 조장한다. 언론의 책임도 크다. 고위직 인사 발령이 나면 출신지역 및 대학과 함께 출신고등학교까지 소개하곤 한다. 그리고는 그럴듯한 해설로 이를 부각시킨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출신대학 보다는 고등학교가 문제가 된다. 대통령이 『특정 고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뭉친다고 하는데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까지 했을 정도니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망국병이라고 할 지역차별로도 부족해 고등학교 차별까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화제가 된 고등학교들을 재벌처럼 빅딜등 구조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병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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