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안도현 시집 「바닷가 우체국」
1999/01/19(화) 17:31
『내 시쓰기는, 지상과 천상의 다리를 놓는 바람의 게임, 즉 연날리기와 같은 것이어야겠다』. 시인 안도현(38)씨가 여섯번째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발행)을 냈다. 시인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그의 시쓰기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연과 나 사이의 거리처럼 아득한,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를 언어로 풀어가는 게임」과 같은 것이다.
기왕에 나온 그의 시집들이 「모닥불」「외롭고 높고 쓸쓸한」등의 제목을 달고 30년대 백석(白石)의 시에서 영향받았음을 숨기지 않고 있듯,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에서도 그는 백석의 어법을 90년대적 감성으로 되살려낸다. 표제작 「바닷가 우체국」은 시인이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오래 전부터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우체국이 있는 한 바닷가 마을 여관방에서 쓴 시다. 거기서 안씨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백석이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했던 시적 발상이 안씨에게는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바뀌었을뿐이다.
세월을 건너뛰어, 70년대 젊은이들이 떠났던 고래사냥은 어떨까. 90년대의 끝자락에도 고래는 「신화처럼 숨쉬며」 살아있을까. 안씨는 고래는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래를 기다리며/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바다만 바라보았지요/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알면서도 기다렸지요/고래를 기다리는 동안/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고래를 기다리며」전문)
격세유전처럼 안씨의 언어는 선배의 언어를 체화해서 이렇게 새로운 시를 만들어낸다. 이발관 그림, 양철지붕, 자리젓, 단풍나무, 낡은 선풍기 등 생활의 작은 사물이 모두 그에 의해서 시로 바뀐다. 그 바탕은 시의식의 천진성이다. 「눈이 내려오신다고/늙은 소나무 한 그루/팔 벌리고 밤새 눈 받다가/팔 하나 뚜둑, 부러졌다//이까짓 것쯤이야/눈이 내려오시는데, 뭘/이까짓 것쯤이야」(「천진난만」전문).
출판사 문학동네는 「바닷가 우체국」을 시작으로 평론가의 해설을 빼고 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한 해설을 붙인 새 시집 시리즈를 낸다. 최승자 이문재의 시집이 뒤를 이을 예정이다. 하종오기자 joha@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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